나는 태어나면서 이름을 얻/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얻었다는 것은 내 안에 다소 찜찜한 부채감이 어느 정도의 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넌 그렇게 살기를 바라'라는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채무도 살짝 주어진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필명을 창/조/했다. 이 말은 내 안에 나만 들어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브런치를 놀잇감 삼아 이런 수준의 글이라도) 쓰지 않았다면 더욱 옅어만 졌을 '채무 변제 능력'이 이만큼이라도 생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2025년 3월의 마지막 날이면서 브런치 발행 42개월째다. 이달의 가장 큰 브런치 이슈 중 하나가 그 필명을 '지담'에서 <정원에>로 개명한 거다.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3월 조회수가 가장 많았던 [ 오늘부터 '지담'은 <정원에> ]에 담았다.)
필명을 바꾼다고 갑작스럽게 글이 좋아지거나, 경험이 다양해지거나, 생활 반경에 급격하게 변화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필명을 바꾼 이후 내게 분명한 정신의 변화가 생겼다. 읽는 눈을 가진 많은 독자들은 그 변화를 발견해 낸 듯했다.
발아래 멀티탭마저도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나도 잘 되지 않는 유형이었다. '지담'은 정해 놓은 시간에(만) 글을 고민했다. 컴퓨터를 켜고 앞에 서야만.
'자, 이제는 글을 써보자'라고 하얀 화면을 띄워 놓아야 비로소 무엇에 대해, 어떻게 쓸까를 생각하는 뇌가 작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쓰기'도 일처럼 처리하는 대상이었던 거다.
그러나 <정원에>로 바꾼 일주일 동안 나는 나 스스로 일과 글을 구분하지 않는 실험을 즐겼다. 손가락은, 눈은 일을 처리하고, 입은 수많은 대화를 해내고, 여러 개의 수업을 하고, 운전을 하고, 출장을 다녀왔지만 내 정신은 계속 글을 쓰고 있었다.
분명 처음이다. 좋은 문장, 적절한 단어, 마음에 남는 표현만이 아니라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건 머릿속에 램프가 늘 켜져 있는 상태로. 이 글을 보시면서 글을 쓴다는 게 '원래 그러는 거' 아닌가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일과 글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몹쓸 이성이 무한하게 작동해대는 스타일이(었)다. 하고 싶은 것(쓰기)과 해야만 하는 것(업무)을 철저하게 구분했던 거다.
3월의 브런치 이슈 중 또 하나는 출판을 전제로 한 글의 주제를 <놀이>로 확정하고 그 첫 번째 글을 3월이 다 가기 전에 발행한 것이다. [ 인생은 나이 '잘'먹기 놀이로구나 ]로!
활을 만든 나무처럼 유연하고 길 위의 신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라.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을 만나거나 더 나은 기회를 포착하면 주저 없이 방향을 바꿀 줄 아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물과 같은 속성을 지녔다. 바위를 돌아 흐르고,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때로는 텅 빈 구덩이가 가득 차도록 호수를 이루었다가, 넘치면 다시 흘러간다. 물은 제가 가야 할 곳이 바다임을, 언젠가는 바다에 닿아야 함을 절대 잊지 않기 때문이다.
_파울로 코엘료, 아처, 2021,문학동네, p.41.
2025년 3월은 방향을 바꾼 달이다. 더 이상 일은 일처럼, 놀이도 일처럼 하느라 버려지는 시간을 지우자고. '글쓰기'를 중심에 둔 멀티플레이를 꿈꾼다. (일을) 처리하고, (여가를) 즐기고, (책을) 읽으면서도 동시에 글감을 굴리고, 기록하고, 조각하며.
나는 돼지띠로 태어나 쥐띠로 살아가고 있다. 한 해를 벌었다. 오래전부터 이미 자식, 형, 남편, 아빠, 교사, 친구의 역할로 동시에 잘 놀아보라는 우주의 명령이 있었다.
그 명령을 즐겁게 이행하는 활동을 나는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다. 예술은 감정, 생각, 경험을 시각, 청각, 언어 등 다양한 형태로 창작하여 표현하는 수단이니까. 결국 나는 스스로 예술인을 자처했(었)던 것이었다. 그 길로 들어섰으면서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는 매일 제대로 느끼기만 하면 된다.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하'지 않고, 놀 때도 일할 때도 놀듯이 예술하는 생활인으로!
자주 울면서,
미소 지으면서,
자꾸 흥얼거리면서,
한 다리로 자주 서 새가 되어 보면서,
제자리에서 아주 짧게 달리며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껴 보면서,
이 모든 감각의 경험들을 매순간, 매일 기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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