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하나 없는 곳이지만

by 정원에

오늘은 확진자가 폭증이라고 라디오 노래 사이사이에 흘러나옵니다. 출근하는 40분 동안 카톡과 전화로 세 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연락을 했습니다. 모두 가족이, 친구가 확진되어서, 증상이 있어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어제저녁에 연락한 학생까지 포함하면 4명입니다. 조금 전에 두 명의 학생이 같은 이유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각각 통화한 후 검사를 받으러 보냈습니다. 이미 확진된 학생 1명을 포함하면 매일 4-5명의 학생들이 증상을 호소하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등교하거나 확진되는 상황입니다.


허릿병으로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상황에 마음만 급합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허리에 기다란 막대를 양쪽으로 두 개를 묶어 놓은 것 같이 뻣뻣합니다. 허리에 힘을 주지 않으려고 하니 더욱 힘이 들어갑니다. 그래도 5층 사무실까지 도착한 뒤, 천천히 차를 한잔 마십니다. 아이들이 오고, 조례를 해야 하는 시간까지는 아직 30여분의 여유가 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도 한 명의 학생이 더 연락이 왔습니다. 오지 말고 병원을 들려 검사 여부를 의뢰하라고 일러주고,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십니다.


조례 시간 전에 우리 반 일지인 O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교실에서 출석부가 사라졌다고. 그런데 표정이 밝고, 예쁩니다. 어제보다 더.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오늘 표정 너무 좋은데'. 그랬더니 '오늘 신입생 대상으로 학교 교육과정 홍보를 해야 해서, 3시간밖에 못 자고, 피켓 만들어 왔다'라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다시 조르륵 교실오 돌아가더는 5분 뒤쯤, 출석부를 찾았다며 다시 가져왔습니다. 미세먼지 맑게 걷힌 듯 순수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이 교실로 향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안경에 김이 서리고, 피곤해 보이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올라와 들어옵니다. 아이들 사이를 인사를 하면서 돌아봤습니다. 어제 중간에 검사를 나간 ㅈ이가 봉투를 불쑥 내밉니다. 음성 확인서입니다. 늘 일찍 오던 ㅎ의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검사를 위해. 어제 잔소리를 들은 ㄱ은 오자마자 엎드려 잠을 청합니다. 우리 반 학급회장은 가슴을 떡 벌리고 앉아 인사를 먼저 건넵니다. 그렇게 또 하루의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6교시는 수업이 아니라 오로지 담임 시간입니다. 창의적 체험활동 중 '진로활동', 줄여서 우리끼리는 창진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아이들의 진로와 관련한 활동을 같이 하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수업 중간에 끼어 있기도 하고, 일주일에 1시간밖에 없어서 꾸준하게 아이들과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로지 수업을 진행하는 담임선생님의 몫으로 남습니다. 가장 큰 난관(?)은 아이들입니다.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이 '창진'시간은 자습 또는 수면보충 시간입니다. 아니, 몸이 이미 그렇게 기억하고 있지요.


그래도 저는 밀고 나갑니다. 일단 오늘 6교시는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어제보다는 햇살이 더 많으니, 햇볕을 쫌 쬐자고. 더워지기 전에, 추워지기 전에 말이죠. 아이들은 옳지 않아도 따라는 하지만, 옳다고 판단하면, 의미 있다고 생각이 들면 쏙 빠져서 더 잘 따라옵니다. 짧은 1시간이지만 그동안 이야기도 나누고, 잔소리도 하고, 웃기도 해야지요. 그렇게 짧은 만남 동안이지만 조금씩 알아갑니다. 강한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 하나 넉넉하지 않은 학교에서 마음속의 그늘이 덜 생기도록, 안 생기도록 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자주 듣고, 이야기 나누는 거라는 생각으로.


도시 학교에서 가장 큰 아쉬움 중 하나가 숲입니다. 간혹 나무는 있지만, 숲이 되질 않아요. 울창하지는 않더라도 군데군데 소복 소복하게 나무 그늘도 많지 않지요. 그래서 더욱 아이들은 계속해서 교실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좋거나 싫거나. 오히려, 교실을 벗어나 복도에서, 운동에서 장난을 치면서 발산하는 아이들이 더 다행으로 보입니다. 제 모교 고등학교는 바닷가 숲 속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고, 간혹은 진지하게 눈물도 서로 닦아주곤 했지요. 마음의 평화를 읽어내는 방법과 타이밍을 그때 어느 정도 연습했던 것 같습니다. 환경 덕분이었지요.


하지만 다 큰 졸업생들이 증명합니다. 조그만 그늘속에서도 다닥다닥 붙어 이야기 나누고, 고민하고, 스스로 떨치고, 다시 시작했던 그 아이들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그런 졸업생 중 한 명이지요. 어제보다는 적지만 오늘도 운동장에는 살짝 햇살에 비춥니다. 조례때 그랬습니다. '몸이 지뿌둥하면 잠깐이라도 햇살을 쪼이고 교실에 들어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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