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민망하더군요

by 정원에

요즘 허릿병때문에 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허릿병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네요. 마라톤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걸어도 괜찮던 허리가 작년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스쿼트, 플랭크, 계단 오르기와 같은 웬만한 근력 운동은 꾸준하게 했는데 말이죠. 지금은 걷는 건 괜찮지만, 앉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눕는 것도, 그 좋아하는 운전하는 것도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한참을 침을 맞다가 어제는 예전에 어깨 때문에 다니던 병원을 찾았습니다. 직장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동네 용하다는 의원입니다. 어깨 통증을 거기서 어느 정도 잡았기 때문에 스스로 믿음을 갖고 다니는 곳이지요. 그런데, 거기 간호사 한 명이 제자입니다. 교직에 있다 보니,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다 보면 이런 경우는 흔합니다. 음식을 분리수거하다 만나는 건 일상이고, 길 가다 만나고, 매장에서 만나고, 배달 온 아이와 머리는 고사하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마스크를 쓰는 게 다행일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아이들이 먼저, 가끔은 제가 먼저 아는 채를 합니다. 안부를 물으면서 짧은 인사를 나누지요. 그런데 가장 당황스러운 건 병원에서 만날때 입니다. 치과에서는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고 있어야 하고, 내과에서는 엉덩이를 까고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비뇨기과에서는 카운트에만 앉자 있는 제자여서 매우 다행스러웠지요. 뭐, 한해 한해 지나면서 제자도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의 기억이 좋지 않게 흐려질까 다소 걱정스럽긴 합니다.


허리에 통증이 심해서, 의사의 권고를 주사를 맞았습니다. 그것도 5대의 주사를. 한참을 기다리다, 이름이 불려서 들어갔더니, 커튼뒤 침대 가운데에 봉그랗게 쿠션 같은 베개가 두 개 겹쳐져 있었습니다. 작은 베개가 있는 쪽이 머리 쪽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이내 들어왔습니다. 들어 오자마자 흰 장갑을 끼더니 '엉덩이가 베개 위에 올라가게 해 주세요. 바지와 속옷을 다 내려주시고요'라고 돌아서서, 주사를 준비하면서 무심한 듯 설명을 했습니다. 물론, 다행스럽게 그 제자는 아니었지요. 아까 병원에 들어올 때 저를 맞이했던 제자 옆에 서있던 간호사였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그 간호사가 따라 들어왔다, 고 저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짧은 설명을 듣고 많이 난감했습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대학원까지 가서 큰 공부를 했던 것이 그런 상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앉으라는 거지' 커튼으로 그 간호사가 분리되어 있던 게 안심이 될 정도였습니다. 바지를 내리고, 속옷까지 내린 채로 일단은 그 봉긋한 쿠션을 깔고 앉았습니다. 작은 베개 쪽을 바라보면서. 몇 초 동안. 그러다 문득 아무리 생각해도 '허리에 주사를 맞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동작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엉거주춤 쿠션을 배에 깔고 엎드리려 하는데, 커튼 위에 움직임이 수상했는지 간호사가 쑤욱 커튼을 걷어 젖히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네. 그렇게 엎드려 주시면 되시고요' 했습니다. '아, 다행이다' 싶었지요.


시원하게 바지를 내리고, 속옷을 내리더니, 또 무심하게 '차갑습니다'하면서 허리부터 엉덩이까지 알코올을 물 흐르듯 흥건히 바르더군요. 구체적인 표현은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불특정 다수의 분들을 불편하게 할까 생략하겠습니다. 뒤에서 앞으로 흘러내리지 말라고 솜뭉치를 간호사 손가락으로 꼬깃꼬깃 밀어 넣더군요. 구석구석, 천천히. 제자가 왜 안 들어왔는지 그제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엎드려 있는 머리맡에서 덜거덕 덜거덕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 다시 허리부터 아래까지 알코올 솜으로 닦아냈습니다. 그리고는 '꼬리뼈로 주사를 맞을 겁니다. 이렇게 알코올 솜으로 소독을 하는데도 2000명 중 한 명꼴로 주사를 맞고 난 뒤 얼굴을 화끈거리고 다리거 저리다는 분들이 계시는데, 2시간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없어지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진짜 살도 없는 꼬리뼈에 주사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느낌상 작은 생수 한 명 정도의 주사량이 들어가는 것처럼 한참을, 아주 한참을 네다섯 번에 나눠서 약물을 주입했습니다. 세네 번째에는 왼쪽 다리로 뜨끈하고, 지릿한 무언가가 훑어내리는 느낌이 선명했습니다. 꼬리뼈 주변으로 큰 물혹이 솟아올랐다 가라앉기를 몇 번 반복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주사실을 옮겨 진짜 허리 주사를 양쪽에 두 대씩을 맞고야 짧지만 강렬했던 고통(?)이 끝났습니다.


카운터에서 결재를 하려는 데 다시 그 제자가 와 있었습니다. 잠깐 나를 외면(?) 해 주었다가 다시 원래 자리에 돌아온 듯 옅은 미소를 입가에 짓고 있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원래 내성적이고, 질문을 잘하지 못하는, 조용조용 착한 아이였는데 여전했습니다. '선생님, 계산해 드릴게요.' 하면서 여전히 조용히 카드 리더기 뒤에서 수줍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 미소를 보면서 허릿병을 빨리 낫기 위해 코어 근력 운동을 더 자주,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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