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근처 새 아파트로 이사 한 지인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잠깐 다녀왔는데, 그 잠깐 동안 얼마나 음식을 많이 준비했는지 검진 전날이었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있었습니다. 테이크 아웃을 해왔다는 데, 또띠야에 다양한 고기와 야채를 감싸서 소스를 찍어 먹는 멕시칸 음식이었습니다. 무슨 화이타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어제 퇴근할 무렵에 딸, 아내와 같이 있는 톡방에 아내가 톡을 올렸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화이타를 먹게 됩니다'라고. 그러면서 퇴근 무렵에 무엇, 무엇을 좀 사다 달라고 했습니다. 요즘 허릿병이 골치입니다. 그래서 퇴근하자마자 한의원에 들려야지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퇴근 후에 한의원에 들렸다 집에 가면 보통 한 시간 이상은 소요가 되잖아요.
어제는 진짜 칼퇴근을 했습니다. 퇴근하면서 한의원 진료 시간도 확인했습니다. 집에서 자동차로 5분 조금 넘게 떨어진 마트에 들렸습니다. 포장된 잡채용 소고기를 절반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릭 요거트를 한 묶음 사고, 할리피뇨는 없어서 그냥 나왔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딸을 만나 건네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한의원으로 가서 50분 넘게 물리 치료를 받고, 침을 맞았습니다. 오랜만에 부황도 했습니다.
그 사이 딸한테 톡이 와 있었습니다. '아빠, 00마트에 가면 할라피뇨 있대요' 하고. 거기 들려서 꽤 큼직한 유리병에 들어 있는 할라피뇨를 하나 사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유리병도 드는 게 불편하다는 생각이었는지, 점퍼 오른쪽 주머니에 억지로 구겨넣고. 그런데 허리는 뜨끈하고 뻑뻑했지만, 걷는 게 신나지는 않았지만, 신호등을 기다리는 게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는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더군요.
집에 들어서는 순간, 집안 가득 살짝 매콤하고 달콤한 기름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순간, 달작지근한 양파같다 생각했습니다. '다녀왔어' 했더니, 아내가 중문쪽으로 머리를 쑥 내밀고 웃으면서 '어서와. 빨리 빨리. 손만 씻고 얼른 와'라고 외쳤습니다. 어릴 적 양손에 롯데 종합 선물세트를 들고 들어오시던 외삼촌을 맞이하던 나처럼.
식탁에는 이미 넉넉하게 음식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이제 할라피뇨만 조금 꺼내놓으면 될 정도로 플레이팅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옆에서 딸도 분주하게 조로록 조로록 따라다니면서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우리집이 천국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문득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하루 빨리 물러나야한다는 생각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면서 내 입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참 달고, 맛있었습니다. 우리집이 맛집이었습니다. 아주 미안하게도.
아내도 학교에 근무합니다. 그것도 인간계와 생명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학교에서. 최근에는 나보다도 더 일이 많은 부장교사를 몇년째 하고 있습니다. 3월에는 더더욱 힘이 듭니다. 비행기가 가득 채운 에너지의 상당량을 이륙할 때 쓰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학교가 3월에 정신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바뀐 인간관계, 바뀐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에 적응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는 학교에서만 7천보를 넘게 걸었습니다. 5층까지 오르내리기를 열댓번. 그렇게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하고 같이 피곤한데, 아니 더 일하고 더 피곤할텐데. 집에 와서 이렇게 음식, 아니 '요리'를 만드는 게 어렵지요. 거의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그냥 시키면 될텐데, 엄마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시켜먹으면서 본인도 쉴 줄 아는,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한테 한가지 더 배웠습니다. '고마울때 고맙다고 표현해야' 한다는 진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