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번에 발행한 글 <글로 소득>에 보내 준 독자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질문에 대한 답글입니다.
게임은 물론 카메라도 잘 사용하지 않고, 코로나19 전에는 카톡도 사용하지 않던 나다. 연락은 주로 메일과 문자로만 했던, 자칭 하이브리드형 디지털노마드이다.
특별한 이유? 있었다. 처음 휴대폰이 생겼을 때 너무 재밌게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메모하지 않는 어른이가 내게서 보였다. 미웠다.
그래서 슬쩍 또 혼자 금연을 시작했듯이 출근하면 모니터 아래에, 퇴근하면 바구니 안에 넣고 밤새 충전(만) 하기 시작했다. (급하게) 걸려오는 전화는 워치로 확인이 가능했으니까,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 내가 2년여 전부터는 휴대폰 사용량이 다시 엄청나게 늘었다. 그런데 이제는 줄이고 싶지 않다. 아니, 오히려 새벽마다, 틈날 때마다 더 쓰고 싶어진다.
조금 전에 휴대폰의 (설정 - 디지털 웰빙)에서 확인해 보니 3시에 일어나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 3시 39분까지, 39분 중 무려 22분을 이미 사용하고 있단다.
백그라운드에서 자동으로 실행되는 걷기 어플(5분 사용), 영단어 어플(5분 사용) 등 두 개를 제외하면 '생산성 및 금융' 어플 사용 시간을 12분 동안 사용하고 있다.
뱅킹은 거의 하지 않으니, 그 시간 대부분이 '생산성'으로 분류되는 어플 두 개를 집중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폰 화면 배치에서도 엄지 손가락이 최애하는 자리에 딱 위치하고 있는 어플이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을 울리고, 정신을 흔드는 문장이나 표현을 수없이 만난다.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 그게 이 말이었어!', '아하', '와'하는 감탄스러운 깨달음은 이내 잊힌다.
잡념에 밀려나고, 걱정에 지워진다. 오락가락하는 마음에 씻겨 나가 버린다. 고작 간당간당 매달려 있는 기억이더라도 표절에 가까운 가짜 표현만 남을 뿐이다.
하지만 제대로 읽는다는 건 그게 아니라고 믿는다. 그 문장이 나의 정신을 통과해 내 것으로 각색이 되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뒤 나름의 깊은 맛이 일상에 게에 장이 스며들듯이 해야 비로소 진짜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나를 살리는 문장이 되는 것이다.
결국, 내게 제대로 책을 읽는다는 건 나만의 숙성 시스템(!)이 필요하다란 의미다. 읽다 만난 그 순간, 그때의 감동을 잃지 않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런 내 생각이 몇 해 전 우연히 알게 된 두 어플, 구글 렌즈(이하 렌즈)와 구글 KEEP(이하 킵)의 콜라보 기능으로 신념이 되어 가고 있다.
몇 해 전에야 이 둘의 콜라보 효과를 알게 되어 너무 아까울 뿐이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 수많은 시간 동안 수많은 노트를 쓰면서도 내게 남은 게 그리 넉넉지 못해 여전히 이리 살고 있나 싶어지기까지 한다.
책을 읽을 때(마다) 휴대폰 먼저 챙겨 오는 이유다. 모든 소리와 알림이 없는 휴대폰만 옆에 가져다 놓으면 벌써 가슴이 설렌다. 혼자 신나기 시작한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언제나 (렌즈&킵) 이 두 개의 어플을 미리 실행시켜 둔다. 책을 읽다 훅 들어오는 문장을 만나면 '현장'에 찍는다.
해당 페이지의 해당 문장에 블록을 씌운 후 복사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자칫 '샛길'로 빠져들 때도 있다. 렌즈의 어마 어마한 기능때문이다.
복사한 문장과 관련한 글, 블로그 등 연결되는 내용의 링크들이 아래에 주르륵 따라 제시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허락할 때는 문장 하나를 따라 여기저기 흘러 들어가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황홀경도 신세계다.
하지만 읽던 책을 더 빨리, 많이 읽고 싶은 욕심에 아직은 이 정도의 느긋함을 발휘하진 못한다.
그런 후 킵에 옮긴다. 지금 나의 킵에서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내 마음대로 메모 랭킹은 [문득, 글감], [쓰기 연습항목], [오늘의 1초 KEEP], [책, 저자] 순이다.
[문득, 글감]은 제목처럼 갑자기 떠오른 글감을 적어 두는 메모이다. 걷다가, 일하다가, 운동하다가, 멍 때리다가 '번쩍'하고 떠오르는 단어 하나만 쓸 때도 있고, 주르륵 이어지는 생각을 적어 둘 때도 있다.
[쓰기 연습항목]은 말 그대로 쓰기 연습장이다. 아무거나 막 쓴다. 말인지, 뭔지 모르게 그냥 막 쓴다. '1분 동안 멈추지 않고 막 쓰기', '가만히 1분 30초 동안 들여다 보고, 사진 찍고, 메모해 두기'를 연습한다.
'오늘 있었던 일 아무거나 한 문장 쓰기', '카피 만들기', '패러디 시 쓰기', '장면 묘사하기', '동요 바꿔 쓰기'를 연습한다. 킵 덕분에 그냥 이러고 혼자 논다. 그러다 보면 은근히 여기서 깊은 카타르시스를 자주 느낀다.
[오늘의 1초 KEEP]은 가장 오래 쓰고 있는 킵 메모장이다. 2023년 11월 28일이 시작일이다. 주로 일기 형식으로 (거의) 매일 기록을 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순간 포착이다.
'운동일기', '꿈 일기', '몸 일기', '잠 스토리', '마음 일기', '걱정 일기', '날씨 일기', '1일 1 여행', '코코 일기'(코코는 우리 집 반려견이다), '식재료 일기'를 쓰고 있다. 매일 쓰는 건 아니다. 늘 킵을 열어 읽다 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쓴다.
아, 매일 쓰는 게 있긴 있다. ''오늘 아침에 먹은 것', '오늘 점심에 먹은 것', '오늘 저녁에 먹은 것'은 2023년 11월 28일 이후 매일 쓰고 있다. 매일 내가 어디에서 누구랑 무엇을 먹고 사는지에 대해.
몇 글자인지는 모르겠는데 킵 메모 하나에는 글자수 제한이 있다. 신나게 쓰다 보면 4백 몇 글자 남기면 노란 경고 문구가 뜬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을 기록해 놓을 수 있어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몇 글자인지는 모르겠는데 킵 메모 하나에는 글자수 제한이 있다. 신나게 쓰다 보면 4백 몇 글자 남기면 노란 경고 문구가 뜬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을 기록해 놓을 수 있어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킵에는 사진 등 멀티 자료 첨부도 가능하다. 그 덕분이다. 사진을 잘 찍지 않던 내가 오히려 킵을 사용한 이후 다른 일상에서도 무조건 사진부터 찍는 나로 변했다.
무엇보다 이 두 어플을 세트처럼 활용하다 보니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데 아주 유용하다. 물론 책 읽는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5권을 장소와 시간을 달리하면서 읽고 있다.
무엇보다 킵에 옮겨 적어 둔 메모는 나의 보물 창고이다. 재미 보관소이고, 대장간이고, 해우소이다. 언제든 내 곁에 같이 붙어 다니는 사랑스러운 이동도서관이다.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환상이다. 그렇게 여러 번 읽다 보면 그 문장과 연결된 내 삶이 흘러나온다. 숙성된 영혼의 농축액이 흘러나온다.
아직 깊은 맛은 덜하지만 씁쓸해도 맛 좋은 삶의 원액이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둔다. 그러면 나의 생각, 삶이 글감이 되고 글이 될 준비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지난 글 <글로 소득>에서 말하지 못한 글력 운동을 하나 덧붙여야겠다. 나에게 가장 강력한 글력 운동은 <새벽 기상>이다.
올빼미형 인간으로 한참을 살았던 과거의 나에게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말을 걸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다 나만의 위대한 새벽 덕분이다.
25년간 있었던 곳에서 전근을 떠나오면서 시작된 새벽 기상. 처음에는 불안과 걱정으로 시작된 강제 기상. 그 후 3년을 넘기면서 이제는 설렘, 환대, 기대, 기쁨, 충만...
몸에 좋고 정신의 맛도 나는 온갖 수식어를 다 가져다 붙여도 모자라는 시간이 되어 준다. 그냥 일어나 아무것도 안 하고 보이차 두어 잔만 마시고 앉아 있어도 하루를 번 느낌이 가득하다.
어제처럼 잠들어도, 이제는 서너 시에 벌떡 일어나 진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아내와 타탁이(우리 집 반려견이다)와 산책을 나갔다. 타닥이 눈빛이 '어, 이 시간에 쉰생아 아빠가 웬일이래?' 한다.
7시가 조금 못되어 시작한 저녁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내와 느릿하게, 많이 먹은 탓이다. 오랜만에 파사삭 치킨을 먹은 덕분이다. 그렇게 40분 가까이 산책을 했다. 뛰었다 걸었다 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걸었다.
그러다 아내는 막 문을 닫으려고 하는 단골 커피집에 들러 원두를 두 봉지 샀다. 그런데 이 단골집은 자그마한 원두 한 봉지를 사도 그 원두로 내린 커피를 한 장 준다. 빈 손으로 나오다 나와 눈이 맞은 아내가 그랬다.
'킵 해주세요'라고 했지. 그것도 두 잔이나!!!
씨익 웃고 다시 혼자 뛰어 나가는 아내 뒤에다 혼잣말로 외쳤다.
'킵,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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