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운 나무들에게

[ 나무야 나무야 ] 04

by 정원에


어둑한 구름에 숲길은 숨죽이듯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길은 생명이 넘쳐 났다. 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흔들리는 가지위의 잎사귀가 손짓하듯 연신 까닥거렸다.


비에 젖어 시커멓게 변한 나무들은 대지를 더욱 악착같이 부여잡고 있었다. 그 나무들 사이 사이로 자그마한 새 한 마리가 새 한 마리를 좇아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 다녔다.


그 아래에 앉아 하늘의 별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이 100달러와 함께 남긴 마지막 편지를 천천히, 여러 번 읽었다.


그날 오후. 올 들어 가장 오랜 종례를 했다. 5분 가까이, 열여덟 아이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면서 정성스레 읽어 주었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듣는 자녀, 눈을 감고 듣는 자녀, 눈가가 촉촉해진 자녀, 엎드렸다 슬쩍 일어나 꼿꼿이 앉은 자녀.


목을 깊숙이 집어넣고 숨 죽이듯 듣는 자녀, 편지를 따라 조용히 읊조리는 듯 입술을 달짝 거리는 자녀, 내용을 되새기듯 고개를 끄덕이는 자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음미하는 자녀, 평소와 다르게 차분하고 숙연한 표정을 짓는 자녀, 뭉클해진 마음에 입술에 힘을 주는 자녀.


한숨을 내쉬듯 고개를 들어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며 듣는 자녀, 내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자녀, 꾹 다문 입술가로 따듯한 미소를 짓는 자녀.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는 자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는지 울컥하는 감정을 삼키는 자녀, 생각에 잠긴 듯 창밖 넘어 하늘을 쳐다보는 자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슬그머니 뒤집어 책상 위에 내려놓는 자녀, 숨을 몰아쉬느라 가슴이 들썩이는 자녀, 턱을 괸 채 눈을 감은 자녀.


작은 움직임조차 없이 돌처럼 굳은 듯 앉아 눈동자만 나를 따라다니는 자녀, 기도하는 자녀, 마지막 구절이 끝나자 길게 숨을 내쉬는 자녀.


누가 열여덟을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만 아는 미미한 존재라고 할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온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여백을 내어 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조용한 기적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열여덟 개 나이테를 가진, 가느다랗지만 반듯한 한 그루의 나무로 잘 크고 있었다. 그렇게 모여 자기만의 숲을 서로 잘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매일 그들의 숲 속으로 들어가 심호흡을 하며,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그것이 내겐, 매일 주어지는 정말 감사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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