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검정고시. 주말

by 정원에

요즘 딸 덕분에 참 좋은 노래 많이 듣습니다. 아직 프로는 아니지만, 프로를 꿈꾸며 자신의 재능과 꿈을 키워 나가는 무명 가수들의 노래입니다. 소위 말하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들. 이들의 음원만 모아서 올려주면, 우리 딸과 같은 일반인들이 듣고 평점을 매기기도 하고, 서로 감상을 나누는 그런 클라우드 사이트 덕분에.


아주 한참 전부터 딸, 아내와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면 의례 운전석 옆자리는 딸 차지입니다. 거기에 앉아서, 블루투스를 자기 폰으로 연결해서 그 클라우드 사이트에서 자기 취향의 노래를 많이 틀어 줍니다. 덕분에, 한두 시간 동안 강제(?) 감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몇 곡을 가사까지 귀에 쏙 들어와 가끔 흥얼거리게 되더군요. 그중 한 무명가수가 '검정치마'랍니다. 앳되게 보이는 앨범 사진에 비해 걸쭉한 보이스가 참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조용히 정속 주행을 하면서 딸과 같이 흥얼거리는 상황 차체가 마음의 평화입니다.


대한민국 입시의 최전선이라고 할까요, 고3 담임 노릇을 하는 아빠의 사랑스러운 딸은 고1 나이지만, 홈스쿨링을 한 지 서너 달이 넘어갑니다. 지금은 8월에 있을 검정고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더군요. 1,2월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꽤 자주 혼란스러워하고 눈물을 짓고 하더군요.


중학교를 졸업하기 한 달 전에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딸의 고민도, 두려움도, 도전하고 싶은 것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새로운 준비를 하기로 했지요. 서너 달 지난 지금에는 개인의 의지를 넘어 부족한 정보에, 조금 더 서로 챙겨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뒤섞여 있습니다만, 조금씩 살이 오르고, 밤 11시를 넘기면서 같이 잠이 들고, 7시가 조금 넘으면서 같이 아침을 맞이하는 일상이 고맙기만 합니다.


며칠 전에는 퇴근을 하면서 '다녀왔어' 하는 내 얼굴 앞에 크레딧 카드 같은 걸 한 장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나, 청소년증 가진 여자야'라고 너스레를 떨더군요. 조금 안 카드 속에서 화알짝 웃고 있는 청소년이 참 건강하고, 대견해 보였습니다.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부하고, 무엇을 해야겠다는 다짐보다 서로 약속한 게 있습니다. 가장 우선은, 무조건 금요일-토요일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닌다 - 물론 동네 산책도 여행이고,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도 다 여행이고, 저녁 만찬을 그득 차려 놓고 수다를 떨면서 음식을 나눠 먹는 것도 여행이라고 동의했습니다 - 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했다면, 매주 상상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를 시간들입니다. 대신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각자 역할을, 해야 할 몫을 아주 아주 충실하게 수행해 놓자고 다짐하면서 말이죠. 오늘같이 햇살이 넘치는 날에는, 그 햇살에 집중해 보는 연습이 딸의 긴 인생에 좋은 밑그림으로 그려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어제는 딸 덕분에 잠을 조금 설쳤습니다. 야근이어서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잉? 이제 자자'라고 했더니, 책상에 앉아서 연신 '알라뷰, 알라뷰, 굿 나이트'하더니 새벽녘에 보니 제 옆에 와 자고 있더군요. 자기 이불을 가져오지 않고, 한 이불속에 폭 들어와 이불을 끌어당겨 돌돌 감는 바람에, 왼쪽 다리, 어깨가 시렸습니다. 그랬지만, 오른쪽 어깨에는 살포시 고사리손 같던 한두 살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 전해졌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딸아이에게서 톡이 왔습니다. '잘생긴 울 아빠 오늘도 파이팅!'.


같은 햇살 아래에서 오늘도 '청소년'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아들, 딸들이 햇살을 만끽하면서 당당하게 가슴 펴고 살아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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