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궁궐

by 정원에

주말, 아내, 딸과 함께 궁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처음에는 쏟아지는 햇살을 따라 움직였지만, 막히지 않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종묘 앞에 도착했습니다. 종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탑골 공원 위로 올라왔습니다. 공원 벤치는 물론, 작은 돌 턱 위에도 온몸으로 햇살을 받으려는 남녀노소가 가득했습니다. 대낮부터 취기가 올라온 이들도 있더군요. 그 사이사이를 돌면서 종묘에서 창덕궁까지 한참을 걸었습니다.


딸아이가 하늘색 예쁜 한복을 빌려 입고 하늘거리면서 사진을 뛰어다니는 뒤를 종종거리면서 쫓아다녔습니다. 가끔은 사진사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 참 많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꽃구경이었지만, 마스크에 갇혀 있던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의 열망이 넘쳐흘렀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종묘 담벼락 뒤쪽으로 걸으면서는 얼굴을 향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맘껏 들이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담벼락 틈에서 온 힘을 다해 햇살을 받으려고 겨우내 숨죽여 있다가 어제, 봄날까지 살아 남아 온전히 자신을 뽐내고 있는 제비꽃을 보았습니다. 우리 가족 누구나 말하지도 않고, 그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머물렀지요. 그렇게 꽃구경의 향연을 시작되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가지런히 나 있는 자그마한, 형형색색의 카페와 펍들도 꽃에 뒤질세라 맑은 햇살을 한가득 받으면서 빛나고 있더군요.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세계 문화유산 중의 하나인 창덕궁 앞에는 엄청난 사람 줄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궁안을 들어가기 위해 구불구불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딸이 입고 있던 하늘색 허리끈 같았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궁 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면서 걷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그러다 아주 귀한 광경을 여러 군데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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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할 때처럼 긴 사람 줄이 이어져 있더군요. 지나가다 보니, 어디를 들어가려고 하는 줄이 아니라, 화알짝 핀 벚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었습니다. 순간, '한국 사람들 정말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겨우내 혼자 추위에 돌돌 떨었을 그 한그루 나무는, 자신 앞에서 길게 줄을 서면서 자기와 함께 하려고 모여드는 이들이 얼마나 반가울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사진을 찍는 이들 중 많은 수가 마스크를 벗고 자신의 얼굴을 사람 줄을 향해 간혹 수줍어하면서도 벚꽃보다 훨씬 더 활짝 드러내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벗는다는 게 그저 얼굴을 가리다 민낯을 드러내는 수준이 아니니까요. 갇혀있는 일상에서의 탈출이니까요. 그게 며칠 남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니까요. 옆사람 서넛중 하나는 항체가 생겼을 테니, 작년, 재작년보다는 조금 더 안심이 되는, 일상으로의 복귀이니까요.


그 모습을 옆에서 우연하게 보게 되면서 괜히, 타인의 미소에 따라서 미소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람 따라, 흐름 따라 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한 무리의 공부 무리를 만났습니다. 아니, 그 무리에 우리 가족이 스며들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내 덕분에. 초록색의 내관 복장을 하고 궁 여기저기를 무리를 이끌고 움직이는, 유쾌한 입담으로 재미난 설명을 하는 분이, 역사 분야에서 유명한 작가라고 하더군요. 집에 돌아온 아내가 그 분이 쓴 책 여러 권을 보여주며 말해주었습니다.


그 공부 무리 덕분에, 그 내관님 덕분에 한참을 궁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 이들의 삶을 조금은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툇마루에, 돌턱에 걸터 앉아, 처마밑에서 햇살을 받으면서 그렇게 앉아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남녀노소를 보면서 우울감 때문에 봄날 넘치는 꽃향기도, 그냥 보내기 너무 아까운 햇살도 누리지 못하는 우리 반 그 아이의 삶에도 의욕있는 향기가 넘쳐나는 시간이 얼른 오기를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기도드렸습니다.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도 돌틈에 숨어 있다 살아내는 제비꽃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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