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소 서로에게 잘 표현하지 않고 삽니다. 직장에서 만나는 수직 관계는 물론, 동료들도 마찬가지로. 하기야 가족 간에도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 데 남남끼리는 더욱 쉽지 않을 테지요.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쉽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런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랑한다'는 말을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 언제 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냥 어른이 됩니다. 그러니 자기가 외면받았다, 는 생각을 본인 스스로 가지게 되면 그게 옳은 것이 되어 폭력적인 방식으로 반응하기 일쑤입니다. 가장 손쉬우면서 가장 오래가는 폭력 중에 하나가 언어폭력이지요.
어제저녁 어슴프레 어두워지는 골목을 걷고 있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뒤에서 큰소리로 통화를 했습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내용이 다 들리게 크게. 다른 친구를 만나기로 하고 가는가 봅니다. 그런데 횡단보도 앞에서 통화를 멈추더니, 건너편 길을 향해 냅다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야이~ 개**야'. 길을 건너보니 비슷한 분위기의 또 다른 남학생이 귀찮다는 듯 양손 가운데 손가락을 자기 얼굴까지 들어 올리면서 '에이~ 씨*놈' 하면서 웃더군요. 내 뒤를 따라온 아이가 나랑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한 100여 미터 골목을 같이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학원에 가는 것 같았습니다. 가는 동안, 서로 너무 반가워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언어의 절반은 반가움의 욕설이었네요. 둘은 무척 친해 보였지만, 머쓱함을 욕설로 채우려고 애쓰는 듯 보였습니다.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지요. 다 큰 어른들도 씨*, *팔 하면서 길거리에서, 술집에서 친구를 만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친분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자랑이지요.
그렇게 몸이 기억하게 배워 온 겁니다. '알지?'하고 물어보면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상대방은 마음을, 생각을 알지 못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상대방이 나였고, 우리였던 겁니다. '말을 해야 아나?'라고 되받아 치면서 또 한 번의 위기를 넘어왔지만, 상대방은 전혀 몰랐던 겁니다. 말을 해줘야 알았던 겁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겁니다. 가깝지 않아서, 가족이어서 계속 그렇게. 말을 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늘 그렇게. 동상이몽에 시달리며 살아온 거였던 겁니다.
우리도 그렇게 '당연한' 일상을 채워왔고, 서로의 속마음은 고사하고 겉마음 조차도 말하고, 들어주고, 읽어내고 토닥이는 순수한 인간 행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퇴근 후에 각자 방에서, 각자 휴대폰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또 '당연한' 하루를 보내는 데 익숙해져 버린 것이지요.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지금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게 맞을까 라는 생각을 서로 해봐야 합니다. 교실에 모여 있는 아이들 중 상당수의 아이들이 '마상'을 입고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아이들이 그렇게 줄여 부르더군요.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어떤 아이들은 이미 친절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대로 흡수하고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다정함을 헛갈려하는 듯합니다. 어떤 대가(?)가 바라고 하는 수작인 듯. 이건 뉴스를 통해,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화가 나는 사건들에 대한 반복된 학습때문만은 아닙니다. 신원이 확실하고, 공적으로 인정받은 경우에도 그렇다는 겁니다.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많은 아이들은 우리들보다는 아이들답게 진심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물론 반응에 개인적인 시간차는 존재하지만.
'나쁜 남자'는 그냥 나쁩니다. 열 번을 잘해주다 한 번을 안 해주니 타박한다는 말에 그렇게 섭섭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인간관계의 선순환입니다. 아홉 번을 안 하다 한 번을 해주면, 츤데레 같다며 추켜세우지 말고, 타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동안 그렇게 무심했냐 말입니다. 그래야 악순환을 끊고 선순환의 인간관계로 돌아서는 지름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긍정적 관계의 순환 고리를 어린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오십은 사십이 보면 어른이고, 육십이 보면 어린 사람입니다. 이십은 열다섯이 보면 어른이고, 서른이 보면 어린 사람이지요. 그렇게 가족간에 세대간에 직장 동료간에 표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성장하는 어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그렇게 무리익어 가게 될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