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병 변곡점

by 정원에

달리기를 한 지 4년이 넘었습니다. 전문적인 러너는 아니지만, 동네에서 제가 정해 놓은 코스를 따라 대게는 10km를 1시간 남짓 뜁니다. 가끔은 컨디션이 올라올 때는 하프까지 뛰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주 걸러 한주 정도는 일요일에 왕복 3-4시간 정도 거리의 자전거를 탑니다. 그리고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30분 정도 근력 운동을 합니다. 스쿼트 50개, 플랭크 1-3분, 10킬로 덤벨 30-50개 정도. 아주 피곤한 날은 하루 정도 건너뛰기도 했습니다만. 어찌 되었건, 나름대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싶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10월 무렵, 아침에 출근하려고 머리를 감다 일어서는데, 그 자세로 그냥 주저앉았습니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골반과 척추가 이어지는 부분의 척추 양쪽 근육 부분이 찌릿했습니다. 허리에만 힘을 주어 일어날 수가 없어서, 세면대를 짚고 옆으로 몸을 돌려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일어나니 찌릿한 통증이 뻐근하게 바뀌었습니다. 옷을 입으려고 살살 걸을 때는 오히려 괜찮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양말을 신으려는 자세에서 다시 한번 침대를 털썩 주저앉게 되더군요.


그렇게 지금까지 정형외과, 한의원을 전전하면서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계절적으로 달리기, 자전거를 덜 하는 시기입니다만, 그래도 아무런 운동도 하지 못한 지 꽤 되었네요. 지난주부터는 옮겨 간 학교에서 병 조퇴를 하면서, 다시 정형외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저께, 월요일에도 막히는 도로를 한참만에 지나쳐 주사와 물리치료를 받고 다시 막히는 길을 무너진 허리를 감싸 쥐듯 지나쳐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찌릿한 통증이 앉으면 더 심하게 올라옵니다.


그래서 서서 거실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하지만 서 있으면 가장 편안한 데, 그것도 10분이 넘어가면 허리 왼쪽에 굵은 철사 하나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반려견과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원래 반려견 산책은 낮에 집에서 공부를 하는 딸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월요일에는 딸이 병원 다녀오느라, 타이밍을 놓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패딩을 입고, 반려견 목줄을 챙겼습니다. 이 녀석은 목줄 근처만 가면 말근육 같은 엉덩이 춤을 추면서 신나 합니다.


그렇게 집과 옆 중학교 사잇길로 산책을 나왔습니다. 신이 난 반려견이 앞으로 내달리지 못하게 줄을 짧아 잡았습니다. 힘이 좋은 녀석한테 허리병이 이겨낼 수 없더군요. 내 속도에 녀석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팔에 힘을 잔뜩 넣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이십여분을 걸었습니다. 허리는 찌릿한 느낌을 넘어, 왼쪽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저릿한 느낌이 생겼습니다. 그 사이에 커다란 각목이 심지처럼 박혀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멈추면 오로지 통증이 오지면, 조금씩 다리를 옮겨 놓을 때는 그 통증이 살짝살짝 지워집니다.


그래서 반려견을 집에 데려다 아내에게 맡겨 놓고 그대로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적는 집 위쪽 산책로로 접어들었습니다. 딸과 가끔 산책을 하는 곳입니다. 위쪽 동네까지 꽤 깊숙이 자전거길이 나 있습니다. 아래쪽 큰 하천 옆으로는 오고 가는 사람들, 자전거, 반려견, 어린아이들이 많아 집중하면서 걷기에 영 불편한데, 위쪽 길은 아주 평화롭습니다. 근처에 아파트가 많은 건 같지만, 위쪽 길이 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습니다. 우선은 조명이 살짝 어둡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좋습니다.


가끔 마주치는, 걷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참 열심히 걷는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리병이 생기기 전에는 같이 걸으면서도 그렇게 평소에 집중하지 않았던 부분이더군요. 양팔을 활발하게 사용하면서 모두들 열심히 걸었습니다. 간혹 부자연스럽게, 과도하게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너무 행복해 보였지요. 그렇게 생각을 하는 동안, 얼마나 흘렀을까, 손목의 워치는 1만 보가 넘고 있었습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리의 통증을 몇 분, 아니 몇십 초는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1시간 반을 넘게 걸었습니다. 1만 7 천보 정도더군요. 그리고 집에 들어오니, 병원 막 갔다 왔을 때보다는 허리에 힘(?)이 들어간 기분이었습니다. 슬쩍 코어 근육 운동하는 동작을 해보았습니다. 매트리스에 반듯하게 누워서 배꼽을 불룩하게 올리면서 반대쪽 근육을 조여 받습니다. 잊고 있던 통증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번에는 가느다란 칼날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딱 칼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원천적으로 주저앉게 만드는 고통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겪었던 그 고통과는 조금은 다른 단단함이 느껴지는 통증이었습니다. 참을만하다, 싶은 통증말입니다. 그렇게 열 몇번을 하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벽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쭈욱 벗고. 통증은 여전했지만, 시원했습니다. 마치, 방금 파스 서너 장을 붙인 것처럼. 분명히 달랐습니다. 앉아도, 서도, 걸어도 영 불편했던 통증,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월요일 저녁은 분명 허릿병의 변곡점이 된 것 같습니다.


어제도 그렇게 만 오천보를 넘게 걸었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걸어보려 합니다. 늦게 퇴근해서 늦은 시간이라도 잠자기 전에 걸어보려 합니다. 허리가 딸려가는 느낌이 아니라, 허리로 밀고 걷는 느낌이 좋아서. 느리지만, 천천히 허리에 집중하면서, 그러다 허리를 잊으면서, 그렇게 멍한 상태로 걸어보려 합니다. 스스로 신기한 건 왼쪽 엉덩이를 거쳐 허벅지로 전해지는 찌릿함이, 불쾌한 통증이 많이 덜해졌기 때문에 자신을 가지고 걸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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