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늘 시간의 마법을 경험했다. 굳이 넓은 길을 마다하고 좁고 어두운 재래시장 골목으로 다닌 건, 단지 지름길이어서만은 아니었다. 그곳은 모든 게 살아 꿈틀거리는, 향기의 연금술이 펼쳐지는 공간이었다.
갓 튀겨낸 팥도넛의 뜨끈한 달콤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와 찐빵의 구수함, 떡볶이와 어묵 국물의 매콤함, 배추 전의 노릿함, 치킨의 짭짤함과 시루떡의 쫀득함, 폭폭 끓어 튀어 오르면서 달달하게 유혹하던 단팥죽의 평화로움까지.
이 모든 냄새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시장만의 냄새는 단순한 코끝을 스치는 향이 아니라, 어린 나에게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다 모여 있는 행복의 주문 통로와도 같았다.
지난주까지 입병으로 먹는 게 어설플 때도, 식은 팥줄을 한 그릇 다 비웠고, 꽈배기와 팥도넛을 찾아 제대로 씹지도 못했지만 우물거리며 다 먹었다. 이렇게 지금껏 내 안 음식 취향의 많은 부분이 그 시장길에서 비롯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디를 가든 재래시장을 찾아 들어가는 이유, 못 가면 유독 아쉬운 이유도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무치는 향수 때문이리라.
무엇보다 어린 나를 오래도록 멈추게 했던 곳은 시장 입구, 어둑한 터널처럼 빨려 들어가던 그 길목에 자리한 닭집이었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닭을 잡아 주는 가게. 입구 벽에 붙어 서너 층으로 쌓인 닭장 안, 크고 작은 하얀 닭들은 신비한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벽장처럼 세워진 닭장 바로 아래에선 하얀 김을 피우며 '투투투 툭'소리와 함께 날쌔게 돌아가던 닭털 뽑는 기계의 역동적인 소리가 자주 들렸기 때문이다. 그 기계에서 들리던 소리는 지금도 내 귓가에 생생하다.
내 키 두 배쯤 되는 높이의 원통 안에서 피어오르던 뜨거운 김, 넓고 두꺼운 나무 도마 위에서 생을 다한 닭에게 뜨거운 물을 붓고 초록 버튼을 누르면 흔들흔들 돌아가던 원통.
불과 몇십 초 만에 축 늘어진 붉은 닭살은, 등굣길에 늘 잠들어 있던 휑했던 시장통을 깨우는, 활기차게 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졌었다.
오히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참 잔인한 장면이구나 싶어진다. 굳이 그렇게 보란 듯이 들어내고 안 보여줬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그 시장을 벗어난 이후 다른 시장에서는 한 번도 그 기계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던 시대였던 게 분명하다. 먹고사는 문제를 막아서는 모든 게 불필요했던 시대였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잔인하거나, 무겁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신 기계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곤 했던 걸 보면. 그런데도 내 기억 안에 '공포'가 남아 있지 않은 걸 보면.
오히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뜨거운 물에 젖은 채 축 늘어져 있던, 털북숭이 닭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말끔하게 털이 다 뽑혀 나오던지, 그 원리가 궁금했을 뿐이다. 어린 나에게 그 원통은 마술 상자였다.
그 마술 상자는 언제나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작동했다. 아마 어느 날은 얼른 그 기계 앞에 가서 작동 원리를 알아내야지 하고 바삐 걸었던 날도 있었을 거다.
때로는 학교를 갈 때 눅진하게 잠들었던 온 세상이 부스스 깨어나던 시장길은 나를 위해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 참 좋았다. 시장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서면 걱정도 사라지고, 먹을 것만 넘쳐났다. 그때는 전혀 표현할 줄 몰랐지만 그 활기찬 에너지가 너무 반가웠던, 어린 나였다.
지금도 틈만 나면 시장길로 들어서고 싶은 진짜 이유는 오감이 늘 깨어 있고 정서적 풍요로움을 만끽하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항상 말을 걸어주기 때문이다. 현재를 '그냥' 살아내는, 오늘의 몫을 다하는 사람들이 자꾸 손짓을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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