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스'를 누리는 평범한 삶

[ 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 26

by 정원에

아드님이 스무 살 되던 날. 축하를 하는 자리에서 삶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아드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중 지금껏 기억에 맴도는 건,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물론 그때는 평범함에 대한 서로의 사유를 충분히 나누지는 못했다. 그보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깃든 일종의 해방감과 함께 '어른이'과 '애늙은이' 사이의 경계에 걸쳐 있는 정체성에 대해 더 많은 말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요즘, 아드님은 유쾌한 상황에서 자주 '짜스'라는 표현을 한다. '좋아!', '파이팅'과 같은 뉘앙스의 감탄사 인듯하다. 이 두 음절의 텍스트를 읽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가 다 느껴진다.


프로젝트를 잘 끝내고,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에서 음식을 한가득 얻어 와 식탁 위에 펼쳐놓고, 햇살 가득한 하늘 구름 사진을 찍어 보내고, 바다 위의 윤슬을 배경으로 떡 벌어진 어깨를 보내면서 외마디 비명처럼 외치는 것을 보면!


'평범한' 삶에 대한 바람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이어가고 있다는 아드님식 표현임을 잘 안다. 주 몇 회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기 결정으로 전과를 하고 학업을 이어가고 있고, 정해진 요일에 운동에 집중하면서, 평범이라는 이름의 특별한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아들만의 표현 방식이다.


맞다. 언제나 넉넉하게 먹지는 못하지만 또 못 먹지도 않는 것,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적게 벌지도 않는 것, 깊은 앎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얕지도 않은 것, 넘치지는 않지만 빠지지도 않는 것.


아드님이 삶으로 보여주는 평범함은 결코 특별함이나 비범함의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반복되는 밋밋한 일상 속에서 작은 의미를 길어 올리고, 사소함의 가치를 알아보고, 감사와 기쁨의 타이밍을 잃지 않는, 균형 잡힌 삶의 태도였다.


눈에 띄는 욕망과 특별하고 싶은 유혹, 그리고 내면의 일그러진 정신과 행동들을 스스로 거절하고 단절하는 단단함. 어제보다 조금 더 무너질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오늘의 힘. 그것이 바로 '평범함'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아드님을 통해 깨닫는다.


엊그제 아드님과 같이 다녀왔다며 따님이 보낸 사진 한 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처음 찾아가는 길에 차도 없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서너 시간이나 걸려 서.


생애 첫 선거를 다른 나라에서, 재외국민으로 참여하는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다 가지는 않는다.


나도 겪지 못했던 경험을, 스스럼없이 의지를 가지고 하는 모습만으로도 기특하고 대견하기만 하다.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부모도 자식과 마찬가지로 내일은 처음 살아보는 오늘이다. 그런 오늘에도 평범함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위해, 돌아 돌아 찾아가 결국 한 표를 던졌을 그 마음을 멀리서나마 헤아려 본다.


나는 얼마간 부모인 내가 남매들을 키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금씩 (서로) 철이 들면서 깨닫는다. 부모는 자식에게 영향을 주기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로 자라면서 자식으로부터 무한하게 배우고 있다는 것을.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식의 길 모퉁이에서 서성이는 게 아니라 부모의 길을 스스로 내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자식은 자신의 길로 들어설 뿐이다. 아드님이 말하는 평범한 삶은 그렇게 스스로 다져가는, 아주 특별할 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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