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 27

by 정원에

숲 밖에서 저 높은 봉우리를 한번 올려다본 뒤 숲 속으로 걸어 들어온 지 한참이다. 널브러진 듯하면서도 정돈된 돌을 하나씩 밟는다.


돌 하나하나는 수많은 이들에게 수없이 밟혀 반질하기만 하다. 어느 돌 하나 새 돌이 없다. 다른 이의 발길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을 밟을 때는 다소 용기가 필요하다.


잠시 내려다보지 않고 걸었다면 용기조차 필요 없지만, 삐끗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경험에서 이미 잘 안다.


그렇게 제 갈길을 가다 보면 숲은 깊어진다. 햇살이 가득한 지 비가 흩날리는지 눈이 소복이 내리는 지도 헷갈릴 만큼.

그러다 보면 내 발이 내딛는 길이 급하다, 완만하다를 반복한다. 그럴 때야 발아래를 주시하며 걷게 된다.


조심하게 된다.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내딛는다. 풍랑이 일어야 돛이 팽팽해지듯이.


하지만 뒤로, 원 위치로 밀리지 않으려고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온 힘을 준다.


그 힘 덕분에 평지 때보다 조금 더 빠르게 걷는다. 그러면서 느낀다.


그 경사를 앞서 오른 수많은 이들이 내가 겪는 경사를 다 이겨내고 오르면서 소중한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는 사실을.


돌바닥이 그랬듯이 뒤로 밀리지 말라고 촘촘히 길을 내어 놓았다는 사실을. 그 덕분에 누군가 인지도 모르지만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에 고스란히 포개어 밟으면서 내 갈 길을 간다.


그러면서도 나 스스로의 힘만으로 내 길을 가노라 착각한다. 착각을 착각인 지 모른 채 한참을 내딛다 다시 평지를 만난다. 그제야 안도를 하며 다시 속도를 내려고 하지만 그때야말로 조심해야 한다.


경사지를 오를 때보다 평지에서, 쉽다고 생각하는 길에서 넘어지기 더 십상이다. 착각을 실제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사실은 망각하고 있다. 어디를 향해 걷는 것인지, 어디쯤 걷고 있는지, 왜 그 숲 속으로 들어왔는지.


길이 위험해지고, 때로는 떠나기 전보다 더 초라해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걷는 의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목적을 잊었기 때문이다.


지금 어느 봉우리를 향해 어디쯤 걷고 있는가?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 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 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_ 김민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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