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하루

[ 아주 보통의 하루 ] 03

by 정원에

장맛비가 잠깐 멈춘 하지 다음날 일요일.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파르스름한 햇귀에 온 세상이 밝아지고 있었다.


나의 새벽을 닫고 나온 이른 아침. 일찍부터 햇살은 찬란했다. 후끈한 햇살이 사정없이 촉촉하게 젖은 대지를 말리려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달.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늘 홀로 달리던 익숙한 길이 유난히 촉촉한 청량감으로 넘실거렸다.


눈이 부시게 나부끼는 나뭇잎 하나하나가 햇살에 튕겨 오르는 초록 멸치 무리처럼 군무를 하듯 싱그러웠다.


대지에 부딪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뜨끈하게 간지럽혔지만 하루 비는 나무 아래에 시원한 바람을 잔뜩 남겨 두었다.


그 바람을 핑계 삼아 잠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뭇잎이 살짝살짝 가려주는 햇빛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느라.


걷고 달리는 사람들 사이로 깊은 골짜기처럼 맑아진 하천이 큼지막한 돌계단을 타고 올라 흥건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 옹기종기 모인 물고기 떼마저 신이 난 듯 바글거렸다. 그 위를 청둥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흘러 다니며 영롱한 남색 빛을 발산며 평온함을 더했다.


달리기를 즐기는 나와 달리 느릿한 산책을 좋아하는 아내. 평소라면 주말 아침 일찍 혼자 나가 그 길을 달려갔다 달려온다. 그런 후 늦은 오후에 다시 아내와 산책을 나서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하지날 저녁, 아내가 먼저 '자기야, 내일 달리러 나갈 때 나 꼭 깨워줘. 같이 나가게'라고 부탁을, 먼저 했다.


그렇게 온몸으로 햇살을 맞으며 아내와 단둘이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일요일 아침에 아내가 내 옆에서 함께 뛰어준 것은 처음이다.


'자기 페이스 대로' 하라는 아내의 말에 아내가 빠르게 걷는 동안, 나는 달렸다. 나만의 반환점을 돌아 다시 뛰어 내려오다 그늘 아래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아내를 다시 만났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 속에서 아른거리는 아내가, 30여 분 만에 너무 반가웠다. 함께 3km가 넘게 걸어 집 근처 별다방에 들렀다. 땀으로 흥건했던 몸은 그새 말라 있었다.


시원한 모닝커피 한 잔씩을 들고, 참 오랜만에 일요일 브런치로 샌드위치 하나를 조금씩 잘라 나눠 먹었다. 여느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보다도 특별한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아내한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햇살 좋고, 바람 좋은 오늘. 자기하고 일찍 같이 걷고, 뛰고, 모닝커피까지 먹으니 정말 너무 좋다. 오늘 참 좋다. 오늘 좋았다"


햇살은 여전히 우리를 좇아 오며 이 특별한 아침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 주려는 듯 뜨거운 장면을 소리 없이 기록하고 있었다. 가로수에, 바람에, 내 발걸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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