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하소연, 1333

[ 아주 보통의 하루 ] 06

by 정원에

얼마 전 출근길. 장맛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밤새 내린 비로 길은 진하게 젖어 있었다. 길게 직선으로 뻗은 4차선 도로에서 1차선으로 들어섰다. 00 터널로 진입하기 위해 타고 올라가듯 감아도는 외길로 아침마다 지나가는 길이다.


차량이 꽤나 있어 속도를 60km 이상 내기 어려운 길인데, 그날은 5분 정도 일찍 나섰더니 한가했다. 원래 속도대로 파란색 1톤 트럭을 뒤따라 1차선에서 언덕 위로 휘어진 일방통행로를 올라섰다.


그 순간 바로 앞 파란 트럭 브레이크 등이 급하게 빨개졌다 순간 사라지면서 차가 오른쪽으로 휘청거렸다. 브레이크를 여러 번 나눠 밟으며 멈추었다. 룸미러에 시선을 가져갔다. 다행히 뒤따라 튀어 올라오듯 하는 차량이 바로 뒤에 있지 않았다.


만약 평소처럼 꼬리를 물고 타들어 달려왔다면 저와 뒤차는 추돌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꽤나 큰 상황이었다. 잠깐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앞에서 휘청이던 파란 트럭은 오른쪽으로 한번 더 비틀거리더니 더 빠른 속도로 언덕을 박차고 올라가 사라졌다.


앞 차가 사라진 저의 시야에 그때야 들어찬 게 있었다. 파란 트럭이 도로 위에 솟아 난 돌부리를 피하듯 한 그 자리에 꽤 커다란 동물 사체가 가로로 누워 있는 것을. 뒷따라 오는 차량 행렬 때문에, 차 한 대 지나가는 일방 통로여서 차를 세울 수는 없었다.


평소처럼 앞뒤 차들이 속도를 조금 더 냈었더라면, 앞을 잘 보지 못하고 동물 사체를 타고 넘어갔다면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는 생각이 30여분을 더 달려가는 동안 들었다.


몸집에 비해 자그마했던 동물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촘촘하게 가지런한 새하얀 이빨이 살짝 드러날 정도로 입을 벌리고 휘어진 언덕길을 가속력으로 타고 올라오는 운전자들을 향해 뭐라고 하소연을 하듯 도로 아래쪽을 향해 있던 얼굴이.


큰 트럭 바퀴만 한 크기의 배가 블룩 한 고라니였다. 새벽에 내린 비에 온몸이 젖여 있었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바로 죽은 듯했다. 다행히(?) 치명적인 외상을 입지 않은 듯 가지런히 누워만 있었다.


출근길에 신호등이 정지 신호가 되기를 바란 적이 몇 번 없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초록빛 신호등이 춤을 추듯 연동이 되어 한참을 그냥 달려 나가야만 했다. 계속 아른거리는 고라니 얼굴 때문에 안 되겠다 싶어 갓길에 차를 세웠다.


'로드킬'하고 검색을 했다. 몇 개의 전화번호 중 제일 위에 보인 1588-2504. 눌러보니 폰에 이미 저장되어 있던 한국도로공사 콜센터 번호였다. 몇 번의 기계음뒤에 상담원이 바로 받았다.


'로드킬 신고를 하려고 합니다'라고 했더니 상담원은 담담하게 어느 '고속도로'냐고 되물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알게 된 번호가 1333. 로드킬 신고 전용 번호가 있었다. 번호를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신고자와 가까운 지역으로 연결되는 중'이라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국립국어원에서 '동물찻길사고'로 부르는 로드킬 사고는 최근 5년간의 통계치를 살펴보니 6천 건이 넘었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야생동물의 활동량과 나들이 차량이 동시에 늘어나는 5~6월, 0시에서 오전 8시 사이의 시간대였다.


사고를 당하는 야생동물의 80% 이상이 고라니. 그런데 이 통계치는 고속도로에 국한된 것이다. 물론 신고된 경우만 그러니 실제 로드킬을 당하는 야생 동물들은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다.


야생동물들이 원래 거주지에 인간이 터널을, 도로를 만들면서 인간 세상으로 만들어 온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다. 먹고 살만 해지면서, 동물들에게 미안해지면서 설치하기 시작한 게 생태통로다. '야생 동물들이 지나가고 있어요'라고 안내하는.


하지만 일반국도나 지방도에서는 이마저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 인간이 차가 필수가 된 세상에서 살게 되면서, 우리 주변에서 숨어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이동 통로는 점점 줄어들었을 거다.


먹고 살아야해서 목숨을 걸고 낮, 밤 할 것 없이 이동해야 한다. 그러다 막히고 끊어지고, 사라진 길 위에서 방향을 잃고 헤맨다.


어떨때는 전화를 거는 것만이 최선일 때가 있다. 폰에 전화 번호 1333을 저장해 두었다. '공생'이라는 키워드로.


https://blog.naver.com/ji_da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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