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발행한 <오 나의 메라다(02)>에서 잦은 눈물에 대해 고백을 했었어요. 드라마를 보다가 툭,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훌쩍, 영화의 한 장면을 멈추어 놓고 주르륵하는 요즘의 저를 말이에요.
그런데 마음껏 울지도 못하는 건 '마음 바탕이 선량하지 않기 때문'(p.136)이라고 뼈 때리는 표현을 하는 작가의 책을 다시 꺼냈어요. 바로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에세이 <좋아하기 때문에>죠.
시인 역시 눈물이 많기로 꽤나 유명해요. '마음껏 울어라'며 등을 쓸어내려줄 것만 같은 동네 어르신 같은 시인이 쓴 이 책의 부제가 제목 맞은편에 그 글씨크기 만하게 쓰여 있는 게 이제야 눈에 들어왔네요. '나태주의 인. 생. 수. 업'.
시인은 우리에게 인생에 대해 어떤 지혜를 들려줄까요?
Chapter1. 희망을 말하는 전직 염세주의자
얼마 전 나태주 시인의 강의 영상을 길게 봤어요. 그런데 그냥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고단한 이들에게 따듯한 격려를 전하는 시인도 40년 넘게 교직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은퇴 무렵까지도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염세주의자로 살았다는 고백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인가 봐요.
왜 그럴 때가 있잖아요. 공인들과 내가 가깝게 느껴지는 일종의 내적 친밀감 덕분에 '아, 저런 유명한 분도 저렇구나'하고 전해지는 위로 같은 거요. 집 앞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있는 나무 아래 벤치에 왠지 앉아 계실 것 같은 동네 어른 같은, 혼자만의 느낌 말이에요. 같은 교직에 있는 까마득한 후배로서의 동병상련의 마음이랄까요.
그래서 문득 한참 전에 읽었던 시인의 책을 다시 펼쳐보게 되더군요. 스스로도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시 <풀꽃>을 조금 더 일찍, 아니 교직 생활을 할 때 발표했다면 아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만 그렇다'라고 썼을지도 모르겠다고 농담을 던지죠.
하지만 그 유머에 묵직한 메시지를 숨겨 놓은 것 같아요. 본인은 시인이 될 가능성이나 시적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오늘에 이른 게 아니라고 또 고백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덧붙어요. '시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를 잘 쓰고 싶은 사람이고픈 마음'(p.25)이 있었을 뿐이라고요.
제 마음을 또 들여다보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Chapter2. 보이즈 비 '스몰' 엠비셔스
<풀꽃>이 발표된 해가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2002년이더군요. 그런데 시인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말이죠. 그로부터 10년이나 지난 2012년이었습니다. 저도 본 적이 있는데요.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생명이 주기적으로 선정하는 대형 글자판에 <풀꽃>이 내걸린 게 계기가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찾아봤어요. 2012년 3월 5일 한 신문 경제란에 소개가 되었더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이 사진으로 처음 <풀꽃>을 접했었던 기억이 새록합니다.
마침 그해가 제 인생의 아주 중요한 모멘텀이 된 다른 기관으로 1년 파견 활동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막 복직을 한 해였어요.
오랜만에 만난 낯선 고3 아이들에게 이 시를 수업시간에 읽어 주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를 꽤나 긴 감정으로요. 열여덟의 아이들이 벌써 서른둘, 셋의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제자도 있네요.
나태주 시인도 평생을 시에 바쳤다는데 일흔이 다 되어서야 유명세를 타게 된 겁니다. 시인은 잊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그 당부가 그때의 저에게, 저의 제자들에게 해주는 듯 들리는 건 지금이라도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해 보고 싶은 다짐 때문일 겁니다.
"오늘에 와 나는 젊은 세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려고 허우적거리지 말고, 조그만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분명히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일생을 바쳐 그 꿈을 이뤄내라고. 그것이 그대들의 진정한 성공이고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다." (p.66)
Chapter3. 그대의 별은?
일생을 살면서 가슴에 꿈을 품고 찬란한 기대를 하는 때가 청소년기이죠. 난생처음 꿈이라는 걸 들춰내는 때이니까요. 그런데 지나면서 보면 그때 가졌던 꿈(들)이 언젠가 눈 녹듯 사라져 버린 게 바다만큼 많지 않을까 싶어 질 때가 자주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이런저런 꿈도 참 많았잖아요. 그런데, 먹고살려고 하다 보..... 라며 슬쩍 마음의 핑계를 대려는 순간, 이런 제 마음을 읽으신 듯 한 문장을 발견했어요. 오히려 지금이 청소년기보다 진짜 내 꿈이 좀 더 선명하고, 분명하고, 해볼 만한 꿈이 된 게 아니냐고 조언하듯 말이에요.
"가슴속 별을 잃었는가? 그렇다면 그대의 청소년기로 돌아가라. 그 시절에 품었던 별을 다시금 가슴에 품어라." (p.70)
고롱고롱하다면서도 밝고, 유쾌하고, 소망을, 꿈을, 별을 노래하는 시인은 정말 비극인 인생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도달하려는 목표가 없는 데 있다고 말해요. 누구나 아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아는 것과 그렇게 사는 건 다른 거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말씀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어 볼게요.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죽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 꿈을 갖지 않는 것이 불행입니다.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불행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해보려고 하지 않을 때 이것이 불행입니다. 하늘에 있는 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결코 실패가 죄가 아니며 바로 목표가 없는 것이 죄악입니다." (p.68)
Chapter4. 충忠과 서恕
<좋아하기 때문에>에서 제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시인의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시인의 단골 세탁소에 관한 이야기예요. 시인이 맡긴 옷을 수선해 종이 가방에 넣어 건네준 세탁소 주인 내외한테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아름답게 사시는 분들이 계시어 공주의 하늘이 다 환하다고 덕담을 먼저 건넸데요.
그러자 주인 내외는 아주 수줍은 표정으로 그런 덕담을 해주어 너무 고맙다고 대답을 했답니다. 시인이 자전거를 타고 오려고 하는데 그 남편분이 옷이 든 가방을 자전거 앞 바구니에 정성껏 넣어주며 조심해서 잘 가져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요. 저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무심코 지나쳤거든요. 그냥 '흔한' 장면이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하지만 시인은 달랐어요. 그 내외분의 대응과 남편분의 행동에서요. '정성', '자부심', '섬세한 배려'라는 따듯한 마음을 건져 올리신 겁니다. 그러면서 공자의 충과 서라는 것이 바로 이것들이라고 확신하죠.
이 단어들을 읽고 난 뒤 넘겼던 페이지를 다시 돌아와야 했어요. 그러면서 한참 멍하니 읽기를 멈추었어요. '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저의 마음속에는, 그 '흔한'이라는 말속에는 분명 '당연하다'라는 감정이 녹아져 있다는 생각이 피어올랐거든요.
혼자 있는데도, 아이들을 스물몇 해나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라면서.. 하는 생각에 얼굴에 열감이 훅하고 느껴졌네요. 왜냐하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소비한 만큼 채워야 하고, 소비를 넘는 생산이 있어야 한다'(p.169)는 시인의 문장이 목에 턱 하고 걸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정원에> Y
일요일 아침. 동네 하천변을 달리다가 문득 멈춰 섰어요. 다리밑 물안에서 팔뚝만 한 시커먼 물체가 이었어요. 검은 비닐이 길게 늘어져 있나 했는데, 물고기였습니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더라고요. 발목 정도의 깊이인데, 꽤나 큰 물고기여서 한참을 들여다봤네요.
그런데 가 여든의 시인은 그 물고기가 멈춘 게 아니라고 해요. 만약에 진짜 멈춘 거라면 떠내려 가 버릴 거라고요. 딱 물의 흐름만큼 위를 향해 헤엄쳐야 지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걸 다시 꺼내 본 문장을 또 읽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시인이 삼십 대 친구라고 소개한 한 분이 보낸 연하장 내용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됩니다. 지금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만 하기 위해서라도 내 지느러미를 잘 관리하고, 흐름에 맞춰 흔들어 줘야겠다고요. 한참 뒤에라도 적어도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하는, 볼품없는 할망구望九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연세 드신 분들은 딱 두 부류입니다. 내가 본받고 싶은 분, 아님 나이 들어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런 분"(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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