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아이들이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다른 이유로 학교에 옵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태도가 조금씩 다른 것도 그 다른 이유에서 기인합니다. 물론 여전히 학교가 가장 중요한 사회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대척점에 있는 아이들, 그 사이 어디쯤인가에 어정쩡하게 위치한 아이들도 꽤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학교의 기능과 역할이, 학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여전히 대한민국 고등학교 3학년은 수능을 전제로 존재하는 듯합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개인적으로 건 그날을 의한 '연습'이 필요하듯 고등학교 3학년은 매년 3월, 4월, 6월, 7월, 9월, 10월, 결전의 수능 전까지 6번의 연습을 합니다. 어제는 두 번째 연습일이고요. 물론 타의에 의한 연습이지요.
요즘은 이런 타의적 연습을 적극적으로 피하려는, 회피 전략을 쓰는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 확실히 훨씬 더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로 몸이 불편하고, 요즘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런 경우가 많지요. 무증상으로 확진된 아이만 이번 주에 2명이 더 있으니까요. 그러나, 유독 시험을 볼 때 아프다는 아이들이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스스로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 이 연습이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겠고요. 이것이 구체적인 입시 전형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의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열몇 살에 '진로희망'란에 '무슨 무슨 직업'을 어떤 근거로, 어떤 경험치의 누적으로 당당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가 아닌가 말입니다. 그 행정적 절차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병원을 들려 '진료확인서'를 참 잘 챙겨 옵니다.
우리 반만 해도 운동하고 노래 만들고 그림 그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30퍼센트가 넘습니다. 몸은 일반고에 와 있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자기의 다른 재능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관심이 생겼을 수도 있지요. 또 공부보다는 어릴 적 발견한, 오랫동안 묵혀왔던 다른 분야에 더 끌리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여기에 공부보다는 하루하루 노는 게 좋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친구 따라 학교에 오는 아이들도,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시간 쪼개듯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건강한 아이들도 많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은 월요일 1교시부터 금요일 7교시까지 매주 총 1,750분의 시간이 버겁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움직이고, 밥 먹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졸고, 가끔은 자습과 같은 숨구멍이 있어 버팁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357분의 시간 동안, 흰 종이에 검은 글씨인 타의적 연습은 버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과 동시에 한줄로 쭈욱 긋고 자더라도 등교를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여기는 아이들이 더 많은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학교의 한국적 돌봄 기능에 몸과 마음이 익숙해져 버린 결과입니다. 아주 오래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월요일 오전 10시에 시카고 시내에서 배회하는 드렁커들을 보면서 '한국을 배워야 한다'라고 한 말이 새삼 기억에 납니다.
살다 보니 경우에 따라 정면돌파만큼 필요한 게 건강한 회피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자체로 회피이지요. 묵혀두는 숙제 같은 거지만, 에너지가 바닥이 났을 때는 정면 돌파가 돌이킬 수 있는 손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몸은 물론 특히 마음적으로. 그래서 심호흡 몇 번 하듯이 살짝 그 상황을, 그 생각을, 그 사람을 비켜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러면, 나 스스로도 다른 방식의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경험치가 나이만큼 부족한 우리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살아내는 힘을 기르는 방법, 그들의 요령을 터득하고 있는 샘입니다. '쓰러져도 학교에 가서 쓰러져라'는 폭력적인 심리적 압박을 자연스럽게 받아 안고, 소위 범생이처럼 학교생활을 임무처럼 완수해서, 그 결과로 성인이 되어도 심리적으로 '어덜트'가 되어 버리기 일쑤이니까요.
출근하는 40여분 동안 ㄱ의 전화를 시작으로 카톡으로 9명의 아이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날아옵니다. 한두 명은 엄마의 도움(?)을 받아 용기를 냅니다. 운전 중이라 응답은 하지 못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한 후 한 명 한 명에게 통화를 하고, 상황을 파악합니다. 그 시간이 이십여분은 걸립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톡을 보내고, 확인 여부를 기다리고 있어 응답이 빠릅니다. 그러다 보면 아침 조례를 위해 교실에 들어갈 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무사히 와 있는 아이들과, 못 오고, 안 오는 아이들을 이어주는 시간을 만들어 갑니다. 와 있는 아이들이 오늘도 예쓰의 마음으로 잘 버티기를, 못 오고 안온 아이들이 의미 있게 건강한 하루를 채워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