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는 날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07

by 정원에


남매들이 어린이를 벗어나면서 비 오는 날에는 자주 느끼게 된다. 부모라는 이름만으로 위대한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크고 작은 날씨를 극복하면서 제 역할을 해냈다는 면에서 말이다.


아마 그런 면에서 날씨를 '극복'했다고 쓰고도 서로의 욕구를 적절하게 조절했다고 읽히는가 보다.


인간의 정신은 이성, 기개, 욕구로 이루어진다(주1)고 한 플라톤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부모는 어떠한 날씨 환경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기개를 펼친다. 동시에 부모 자신의 욕구와 이성을 잃은 (아)이들의 넘쳐나는 그것까지 적절하게 거의 다 충족시켜 준다.


참, 신비한 일이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기회조차 없었던 역할 경험인데 말이다. 부모 역할을 해보지 못한 플라톤이 보더라도 분명히 부모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그가 이야기 한 '훌륭한'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부모 역할이 더욱 놀라운 점은 부모 자신들이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 욕구를 조절하고, 자제하고, 양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아주 투명하게 말이다.


우리의 일상은 폭염도 한파도, 태풍도 휘몰아 친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날수를 따져보면 그런 날씨의 극값은 그리 많지 않다. 한 해만 봐도 365일 중에 폭염, 한파, 태풍을 다 합쳐도 평균 30일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대부분은 조금 벌어진 틈처럼 살짝 차이나는 온도 차 정도이다. 선호하는 에어컨이나 히터의 온도 차이, 걷는 속도 차이, 시선이 머무는 정도 차이, 타이밍 차이, 관심과 욕망의 대상 차이에서 오는 마음과 정신의 온도 차이처럼.


이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진, 밋밋한 듯한 하루가 더 많다. 마치 우리의 삶에 웃음과 울음이 혼재하지만, 대부분은 크게 웃지도 계속해서 울기만 하지도 않는 '권태로울 정도로 아무 일 없는' 오늘로 가득 채워지듯 말이다.


아무 일 없는, 어제와 같이 밍밍한 복숭아 맛 같은 오늘 안에서 '마냥'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 '가끔' 잘 사는 것, 오늘 하루 중 '몇 시간' 잘 보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야 그 연습을 통해 날씨의 극값에서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고 버텨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연습은 날씨를 예보하듯 각자의 욕구를 예보해 보는데서 시작하면 어떨까. 자그마한 쪽지로, 짧은 톡으로, 나지막한 말로, 서툴지만 글로, 간단한 그림 등으로 미리 표현해 보는 거다. 세 살 막내도, 서른여덟 아빠도, 육십 다섯 할머니도 다같이, 서로에게.


언제나 즉흥적인 욕구가 문제이니까. 그런 욕구들이 충돌할 위험성이 큰 거니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욕구가 예보된다면 비 예보에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서듯 미리 시간을 벌 수 있지 싶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욕구 조절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욕구 예보제의 가장 큰 이점은 어릴 적부터 일찍, 자주 상대방과의 자기 욕구 조절과 충족을 위한 관계 연습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강압으로 충족되는 욕구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능력이 길러져야 아무 일 없는 날을 만끽할 수 있어질거다. 그렇게 되어야 가진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자기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될거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기와 연결된 관계를 말랑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사회성은 어쩌면 덤으로 부여되는 천성일지도 모른다.


감추려 했던 자기 안의 문제가 외부로 투사된 것이 적(주2)이라고 지젝은 말한다. 어딜 가든 자신과 갈등을 빚는 누군가가 생겨난다면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받아 들어야 한다는 충고를 곁들이면서 말이다.


이 말이 아무 일도 없는 날을 많이 만들려면 나의 욕구를 내가 먼저 읽어 내고 적절한 방식으로 미리 표현하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거야, 라고 읽힌다.





_주1, 주2 > 게으르게 읽는 제로베이스 철학, 이인, 2023, 그린비




[ 알림 ] _ 8월 23일 [ 위대한 시간 2 ]에 작가와 독자를 초대합니다!!

@일정 : 2025. 8. 23(토) 13:00-17:00 (1차 -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

2025. 8. 30(토) 17:00-19:00 (2차 - 온라인)

https://guhnyulwon.wixsite.com/my-site-2


@참여방법 : 참가비(1,2차 모두 합쳐 3만 원). 아래 신청링크 클릭

@신청링크 : https://forms.gle/3xgDsqr5VYCuQfpRA

@장소 및 신청기한은 따로 명시하지 않겠습니다.(지난 1월이 경우 너무 많이 모이셔서 부득이하게 온라인으로 참여를 유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신청기한은 선착순으로 100분까지만 오프라인, 그 이후는 온라인으로 참여하실 수 있으며 장소도 인원에 따라 변경될 수 있기에 '서울'이라는 것만 알려드리고 차후 공지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ji_da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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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로 7월 28일부터 30일 연속 글쓰기 중입니다. 30일 뒤에 한 권의 초고를 완성하려는 도전입니다. 그러는 동안 기존 라이팅 레시피는 잠시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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