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과 모래성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15

by 정원에

도장을 하나 새겼다. 그 도장을 주머니에 넣고, 오랜 친구와 골목을 양쪽으로 가르는 작은 술집에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업무적으로 사인이 가능한 경우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도장은 유효하다. 종이위에도, 내 마음속에서도.

스물 몇해 전, 사회생활의 시작을 증명하던 것들이 있었다. 명함, 신용카드, 각종 기호와 번호가 부여된 신분증, 그리고 도장.


그 네모와 동그라미 안에는 분명 '나'가 포함되어 있었다. 익숙한 나, 그러나 때로는 내가 맞나 싶은 나. 일하는 나와 퇴근 후의 나, 책임을 진 나와 자유로운 내가 연결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그날 우리는 낮에 각자 통화했던 고향 친구 A의 이야기를 나눴다. 스무 해 넘게 기업과 개인의 납세 관련 업무를 책임져 온 그는, 이제 개인 사무실 개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징계를 받고 있느라 고욕인가 보다. 이유는 ‘실적 저조’.

나와 친구한테 따로 전화를 걸어 하소연과 넋두리, 한탄이 뒤섞인 이야기를 했다. 나도, 친구도 A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만 줄 수밖에 없었다. 법적인 일탈의 문제가 아니라 '실적 저조'가 징계의 원인이라고 하니까 더욱 더 그랬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들의 걱정 섞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한다. A가 상관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아 생긴, 관계의 문제라고 말이다. 무엇을 지시하고 왜 따르지 않았는지는 잘 몰라 무어라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아 듣다 보니 드는 생각은 분명했다.


어릴 적 남매들은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만들어 노는 것을 지독히도 좋아했다. 둘이 노는 것을 보면 아들은 정성껏 모래성을 쌓는다. 그러는 동안 두 살 아래 딸은 깊은 터널을 판다. 옆으로 옆으로. 딸이 파놓은 그 터널 끝에 또 다른 모래성을 하나 더 쌓는다. 그러는 동안 파도는 쉴 새 없이 들락거리면서 터널을 적신다. 모래성 아랫 부분을 슬슬 쓸어가 버린다.


그러면 남매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엉덩이를 바다 쪽으로 향하고 상체를 완전히 모래성 쪽으로 숙인 상태로 팔꿈치부터 손바닥까지 팔 전체를 사용해서 모래를 더 열심히 쓸어 담아 쌓기를 반복한다.


사과 반쪽 같은 엉덩이로 동해 바다 파도를 전부 다 막으면서 거대한 모래성을 쌓아 올릴 기세로 말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모래성은 다시 무너져서 온 세상이 리셋되듯 깨끗해지기를 반복한다. 터널이 잠기고, 모래성이 사라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남매는 오히려 박수를 치고, 서로를 쳐다보면서 환호성을 지른다.

뜨거운 햇살아래서 벌겋게 온몸이 달아 올라오는 것 같아 이제 그만, 하고 싶은 마음도 어느 순간 잊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때 남매들의 모습 어디에서도 나약하고, 비겁하고, 실망에 절어 포기하려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무너짐은 끝이 아니었던 거다.


그러나 우리는 무너지는 모래성을 보면서 의미 없다, 의미 없다를 자동 연사로 중얼거린다. 부서졌었다는 아픈 과거에 대한 기억만 가득하다면 더욱 사람에 따라서는 갑갑함과 자책, 모멸감까지 느껴질지도 모른다. 수단과 목적이 언제나 분리된 노동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노동의 현장에서 '나'를 증명하는 것들이 앞에서 이야기한 다양한 형태의 신분증, 도장 등이다. 이것들은 특정하게 부여된 업무를 통해 나를 증명하라는 지시에 대한 약속, 그 일을 내가 아닌 당신을 위해 완수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다 보면 그 과정에서 내가 사라지는 자괴감을 (자주) 느끼게 된다. 네모와 동그란 도장 안에 갇힌 직장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경험해 보는 감정이다.


하지만 네모와 동그라미 안에 있는 나는 처음부터 올곧은 내가 아니었지 싶다.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만 하면서 돈까지 받는 꿈같은 직장 생활은 사실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그런 약속을 했었으니까.


27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 세 번째 직장이 사실, 나와 가장 잘 안 어울리는 곳이었다는 것을 다시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느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친구도, 나도, A도 언젠가는 끝내고 각자 남을 거란 거다. 결국 그전에 작고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해 봐야지 싶다.


계속되는 시도와 실패 사이에 긴 터널이 만들어지면 그 공간에 언제나 공기로 충만한 일상처럼 각자의 삶도 충만해지리라는 기대를 가져야지 싶다. 그런 시도가 계속 이어진다는 건 남매들이 환호성을 질렀던 모래성 그 자체이기 때문에.

바로 그런 기대를 갖고 살아내는 일상에서의 자기 충족적 예언말이다. 지금 A와 친구, 나에게는 모래성을 쌓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시도를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껏 수많은 도장을 찍어대면서 무엇을 그리 보증하고 살았는가는 모르겠지만, A가 신나게 도장 찍으면서 너털웃음 짓기를 바랄 뿐이다. A에게 보낼 화분을 보러 나를 데리고 나가봐야겠다.





[ 알림 ] _ 8월 23일 [ 위대한 시간 2 ]에 작가와 독자를 초대합니다!!

@일정 : 2025. 8. 23(토) 13:00-17:00 (1차 -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

2025. 8. 30(토) 17:00-19:00 (2차 -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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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로 7월 28일부터 30일 연속 글쓰기 중입니다. 30일 뒤에 한 권의 초고를 완성하려는 도전입니다. 그러는 동안 기존 라이팅 레시피는 잠시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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