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한 일상의 이유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16

by 정원에

출근을 위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자그마한 경비원이 두 다리를 모으고 살짝 구부린 채 양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감고, 무릎을 조금 더 내렸다면 명동 성당 지하 기도실에서 이른 아침에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하던 어느 분 같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여기 가요..."


그분은 자신의 뒤쪽으로 지나쳐 가려는 나에게 설명을 하려 마른 입술을 달짝였다. 일부러 멈춰 그분 시선이 가리키는 위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그분과 나란히 무릎을 굽혔다.


그랬더니 차도 모서리에서 인도로 올라서는 바닥 콘크리트가 움푹 깨져 있는 것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부서진 콘크리트는 약 3센티 정도로 얇은 자전거 바퀴로 지나치면 토독거리며 살짝 흔들릴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부분이 젊은 분들한테는 별 문제가 없지만 느릿하게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어르신들한테는 보이지 않아, 걸려 넘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말 그렇다. '뜻밖에 일어난 걱정할 만한 사고', '결함이나 허물', '핑계나 트집', '몸에 생긴 병'. 우리말 같은 한자어 '탈頉'이 가리키는 의미들이다. 한자 하나만 봐도 무탈한 날이 정말 기적같이 대단한 날이지 싶다. '머리 혈이 멈춰'버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속뜻을 보니 더욱더 그렇다.



새벽을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받아 안은 지 16개월이 지나간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어기지 않고 불을 밝힌 전기, 차를 끓일 수 있도록 언제나 흘러넘친 수돗물은 누군가가 자신의 밤을 새벽을 내어주어서 가능했구나 싶어졌다. 13층 허공에서 매일 새벽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는 동안 지하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는 막힌 배수구를 뚫어내고 있어서 가능했지 싶다.


아침저녁으로 달려갔다 오는 익숙한 길 위에서도 언제나 먼저 자신의 속도를 나를 위해 조절해 준 누군가를 만났었기 때문에 무탈한 하루가 더 늘어났던 거다. 마치 같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동안에도 가족들의 속도에 맞추느라 겉옷마저 벗지 못하고 주방으로 달려가는 매일의 아내처럼.


오래전 '생존 수영'이란 표현이 회자가 되었었때가 있다. 들뜬 마음으로 놀러 간 수많은 아이들이 '잘 다녀오지' 못했던 이후에 말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마음 한켠에서 한참 불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은 일어날 거고, '나 혼자라도' 살아내는 기술을 몸이 기억해야 한다, 는 혼자 사는 기술에 대한 강조였으니까요. 거부할 수 없지만, 거북스러운 가르침이었다.


아침의 경비원이 이런 마음을 가졌다면 자신의 위치와 시선을 맞추느라 몸을 낮추면서 사진을 찍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만 걸려 넘어지지 않으면 되니까. 누군가가 넘어진 걸 본다면 짐짓 여유 있는 척 손만 내밀어줘도 내 역할은 다 했고, 그 순간 꽤나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는 비단 물속에서만 숨을 못 쉬는 건 아니다. 물 밖에서도, 흐드러진 봄 속에서 내 마음만 겨울인 것 같을 때가 얼마나 잦은가. 물은 무서우면 들어가지 않으면, 배를 타지 않으면 될지 모르지만 세상 속으로는 어찌 되었건 걸어 들어가 허우적거리기라도 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럴 때 먼저 손을 내밀어 줄 누군가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손을 먼저 내밀어 보는 건 어떨까. 어차피 두 손, 두 팔 다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이왕 뻗친 손이니 말이다. 머릿속으로 앞뒤 재느라, 가슴속에다 대사를 만들어 읊느라 쭈볏쭈볏 거리지만 말고. '도와달라고!'


그러면 자신의 물밖에서 허우적거리던 손일지라도 조심스럽게 내미는 이가 반드시 있다. 겉모습은, 사는 모습은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데 말투가 유쾌하고, 몸짓이 건강하고, 눈짓조차 지혜로워 보이는 이가 있다. 들꽃 같은 이들이 있다.



"당신이 싫어하는 것 백 가지를 적어 보라. 그러면 그 싫은 것들이 당신 주위를 에워쌀 것이다. 그 대신 좋아하는 것 백 가지를 적어 보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하루하루를 채워 나갈 것이다. 당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세상이 당신을 보는 방식이다." _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류시화, 2024, 수호서재)






[ 알림 ] _ 8월 23일 [ 위대한 시간 2 ]에 작가와 독자를 초대합니다!!

@일정 : 2025. 8. 23(토) 13:00-17:00 (1차 -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

2025. 8. 30(토) 17:00-19:00 (2차 -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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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방법 : 참가비(1,2차 모두 합쳐 3만 원). 아래 신청링크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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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로 7월 28일부터 30일 연속 글쓰기 중입니다. 30일 뒤에 한 권의 초고를 완성하려는 도전입니다. 그러는 동안 기존 라이팅 레시피는 잠시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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