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도 명랑한데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17

by 정원에


3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폭폭한 여름이 다 지나간다. 2025년도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새벽 산책길에 긴바지에 얇은 패딩까지 꺼내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폭염과 폭우에 덥혀지고 젖은 마음들이 얼른 서늘한 가을을 준비하려나 보다.


길어진 소매를 보며 생각한다. 아내가 긴 옷들과 짧은 옷들의 자리를 수북이 맞바꾸는 걸 보면서 생각이 든다.


우리는 발가벗고 태어난 첫날부터 입은 그대로 맞이할 마지막날까지 언제나 옷을 입는다. 그러니 결국, '하루', '오늘', '인생 전체'는 그 자체로 옷이다.


그 옷들을 입고 가끔은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내 시야에 들어온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지만, 한쪽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순간, 저 파란 하늘이 더 넓게 펼쳐질까, 아니면 그마저도 구름이 삼켜 버릴까 궁금해지는 것 자체가 그냥 좋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5층에만 있지 않고 1층에 가끔 내려간다. 스물일곱 해를 같이 근무하고 있는 A를 보러. 어느 한 날도, 약속한 시간에 문을 열었다. 고등학교에 있으면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이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던 3년 가까이 벽을 쌓고 살 때조차도 전혀 티 내지 않고 오히려 더 명랑했던, 절대 동안의 두 살 형이다.


A는 참 편안한 옷 같다. 어느 날, 어떤 때에도 나의 빼꼼한 파란 하늘이 훅훅 넓어져 금방이라도 구름이 걷힐 듯 만들어 줄 것 같은 사람이다. 불쾌한 상황을 유쾌하게 승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내 입장에서는 언제 봐도 걱정하나 없어 보이는 개구쟁이 같다. 그럴 리가 없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날, 1층 교무실을 들어 선 순간에도 눈과 입은 벌써 동시에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어찌, 높은 곳에서 잘 사셔? 얼굴 보기가 어렵네.' 나도 같이 얼굴 근육을 화하게 풀면서 인사를 나누는 시선 사이로 오른쪽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티백 봉지가 들어찼다.


푸하하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투명한 비닐봉지 위에 붙은 라벨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게 무슨 상황이고'. 상황차였다. A는 늘 이런 식이다. 차 하나를 사더라도 웃음을 골라서 사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하루의 아픔 속에서도,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살아내는 걸까. 가볍지 않으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웃음을 품고 사는 그 힘으로. A를 보면 한번 덜 웃는 게, 또 하루인 '오늘' 하루를 채우는데 얼마나 손해인지 모르겠다 싶어진다. 핫도그마저 명랑하려는 세상인데 말이다.


그건 옷만 살짝 뒤집어 봐도 보인다. 우리가 주야장천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보이는 면보다는 보이지 않는 면에 더 신경을 쓴 게 튼튼하고, 질 좋은 옷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내린 경쾌한 바느질이 조각조각난 천들을 요리 저리 잘 연결해서 편안하고, 성능 좋고, 예쁘기까지 한 옷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실오라기 하나 풀리지 않은 채 말이다.

옷마저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늘 입던 옷이지만, 오래 입어 싫증 나는 옷이지만, 새로울 게 없는 옷이지만, '오늘' 입으면 특별한 날이 될 수 있는 그런 애착 옷 말이다. 특별할 것 없는데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옷이다.


물론 옷을 뒤집어 입고 다닐 수도 없고, A(같은 이들)와 항상 동행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한참 전부터 내가 혼자 정한 방법이 하나 있다. 다운된 기분을 올려주고, 그냥 명랑해져서 빼꼼한 파란 하늘을 넓게 넓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이다. 꽤나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이다.


몇 해 전, 옷장을 대대적으로 비웠다. 짧은 것, 긴 것, 겨울 것, 계절마다 조금씩만 남기 나머지는 모두 기부했다. 남긴 건 오래되었지만 튼튼하고, 입으면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옷들뿐이다.


그런 후 다짐했다. '이 옷을 입는 날은 이유 없이 용서하고, 배려하고, 다정하고, 친절하고, 한 번 더 웃자. 내가 먼저 웃자'


옷은 언제나 '오늘' 필요한 거다. 그렇게 오늘이 이어져 가을이 지나고, 한 해가 가고, 또 내가 나를 이끌고 간다. 기분 좋게 나를 옮아 맨 바느질로 나의 온몸을 감싸고. 촘촘하고, 경쾌하게 그리고 명랑하게. 그러다 보면 은유 작가의 말처럼 오늘도 '한번 해볼 만한' 그런 날이 되지 않을까?



언제부턴가 이렇게 생각해요. 글 한 편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잘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요. 글 한 편을 잘 쓰더라도 글 쓴답시고 하루가 엉망이 되면, 그게 또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무엇을 위한 글인가, 회의가 들고요. 잘 살려고 쓰는 건데 쓰다가 잘 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되잖아요. 저한테 '잘 사는 일'은 하루를 잘 보내는 일입니다. '인생'을 잘 사는 건 어려운데 '하루'를 잘 보내는 건 해볼 만하죠.

_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2023, 김영사





[ 알림 ] _ 8월 23일 [ 위대한 시간 2 ]에 작가와 독자를 초대합니다!!

@일정 : 2025. 8. 23(토) 13:00-17:00 (1차 -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

2025. 8. 30(토) 17:00-19:00 (2차 - 온라인)

https://guhnyulwon.wixsite.com/my-site-2


@참여방법 : 참가비(1,2차 모두 합쳐 3만 원). 아래 신청링크 클릭

@신청링크 : https://forms.gle/3xgDsqr5VYCuQfp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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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로 7월 28일부터 30일 연속 글쓰기 중입니다. 30일 뒤에 한 권의 초고를 완성하려는 도전입니다. 그러는 동안 기존 라이팅 레시피는 잠시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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