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창(窓)을 넘어와 어깨에 내려앉는다. 손끝까지 흘러내리며 나를 오래 어루만진다.
창밖을 바라보니, 파란 하늘은 바다 같고 흰 구름은 느릿한 파도 같다. 산능선이는 어지럽게 일렁인다.
그 사이사이에 인간이 만든 직선들이 빼곡하다. 건물의 벽, 도로의 선, 전선의 줄기, 수많은 기둥들.
그 사이사이에 끼어 살아내는 가로수조차 반듯반듯하다. 나도 그 직선들 사이에서 한 자리 차지한다.
어린 시절은 온 세상이 다 곡선이었다. 언덕으로 이어진 시골길, 휘어진 골목길. 불편했지만, 두 발로 걷는 만큼 모두 내 것이었다. 주름진 길마다 삶의 냄새가 배어 있었고, 그 주름 속에서 나는 쉬고, 놀고, 숨 쉬었다. 곡선의 공간은 느리고 넉넉했으며, 삶을 안아 주었다.
어른이 된 뒤의 공간은 직선이다. 곧게 뻗은 도로, 반듯한 빌딩, 효율과 속도를 강요하는 공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곡선은 펴졌고, 사람은 사라졌다. 직선의 공간은 넓고 반듯하지만, 쉼이 불편하다. 곧장 목표로 달려가라 명령하며, 끊임없는 역할이 요구된다.
이 두 세계의 경계에 창(窓)이 있다. 창은 현실과 환상, 곡선과 직선, 내부와 외부, 현실과 재현, 그리고 시간의 경계를 잇는다. 르네 마그리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보여 주었듯, 창은 보는 이의 인식을 흔들며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바깥인가, 재현된 그림인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실제인지 이미지인지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안과 밖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 동시에 연결한다. 안쪽에 있는 내가 바깥 세계와 소통하게 한다. 보이는 풍경 너머를 해석하고, 그곳에 없는 것을 욕망하게 만든다.
내가 원래 속한 삶은 곡선의 공간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며, 늘어났다 줄어들고, 움츠렸다 펴지는 공간. 그 안에서는 나를 들여다보고, 쉬어가고, 충전할 수 있다. 곡선의 공간은 삶의 깊이를 만들고, 직선의 공간은 삶의 속도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구불구불한 실개천 옆 산책로를 걷는다. 알록달록하고 반듯한 자전거 도로, 직선으로 펴진 개천. 여름이면 그 길은 거대한 하수구가 된다. 산책은 매일 하지만, 삶의 홍수에는 무심해진 지 오래다.
창(窓)은 단순히 바깥을 보여 주는 도구가 아니다.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손짓도 아니다. 창(窓)은 그저 안과 밖이, 현실과 재현이, 직선과 곡선이, 현실과 환상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할 뿐이다.
나와 너를 구분하는 숨결로,
현실과 재현을 잇는 차분한 시선으로,
직선과 곡선을 화해시키는 온화한 품으로,
현실과 환상 사이에 놓인 서늘한 떨림으로,
과거와 현재를 포근히 포개는 기억의 체온으로,
창(窓)은 그렇게 매일, 나만 바라봐 준다. 항상 내 주위에서 맴돈다. 내가 떠남을 아쉬워한다. 밖을, 재현을, 곡선을, 환상을, 지금을 세상의 차가움과 따스함으로 순간, 순간 바꾸면서 내 마음을 끊임없이 설레게 하는 메신저다.
창(窓)은 그 두 세계를 나누면서 동시에 연결한다. 직선과 곡선, 현실과 환상, 의무와 쉼. 나는 오늘도 창(窓)을 사이에 두고, 주름진 곡선의 안전한 공간에 가둬, 그려 넣는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다. 나만의 캔버스인 창(窓)이 삶에 많이 필요한 이유다.
[ 알림 ] _ 드디어!! 이번 주 토요일 8월 23일 [ 위대한 시간 2 ]
@일정 : 2025. 8. 23(토) 13:00-17:00 (1차 -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
2025. 8. 30(토) 17:00-19:00 (2차 - 온라인)
@참여방법 : 참가비(1,2차 모두 합쳐 3만 원). 아래 신청링크 클릭
https://blog.naver.com/ji_dam_
@브런치북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로 7월 28일부터 30일 연속 글쓰기 중입니다. 30일 뒤에 한 권의 초고를 완성하려는 도전입니다. 그러는 동안 기존 라이팅 레시피는 잠시 멈춥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