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도, 닿는 것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29

by 정원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去者日以疎(거자일이소).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물리적 거리’는 중요하다고 여겼던 시대가 만들어 놓은 격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말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이미 사라졌다. 원하면 언제든, 어디서든 소중한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세상.



하지만 과연 우리는 더 가까워졌을까? 관계의 본질이 ‘마음’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살아도 마음이 닿지 않으면 멀고,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깊이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병원을 나서는데 커다란 회전문 안으로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걸어 들어가는 게 저만치 보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멈칫하면서 뒤를 돌아보셨다. 그러자 회전문도 같이 멈추어 섰다.



그 틈으로 할아버지의 눈빛이 내게 와닿았다. 아니, 그 눈빛을 나만 바라봤다. 그 할아버지 눈빛은 손자가 올려다보고 있었고. 내가 뒤따라 타는 줄 아셨나 보다. 옆문으로 나가려다 나는 얼른 회전문 안으로 빨려들 듯 들어섰다.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이 부었고 마스크까지 써서 인사말이 웅얼거렸는데도 할아버지는 '예~'하면서 대답을 해주셨고, 그 목소리에 어린 손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눈빛을 찾는다. 목소리 너머의 얼굴, 그 얼굴을 완성하는 눈빛. 눈빛은 단순히 시선이 아니다. 감정과 생각, 의도와 분위기, 내면의 온기가 스며 있는 투명한 샘물이다.



문제는 온라인 세상에서 이 눈빛이 자주 어긋난다는 점이다. 상대방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보지 못한다. 카메라 렌즈와 화면 속 얼굴의 위치가 달라서 내가 그의 눈을 응시할 수 없고, 그도 나의 눈빛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화면을 보면 렌즈를 놓치고, 렌즈를 보면 그의 눈빛을 잃는다.



이 작은 불일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인가? 나는 진짜 나로 보이고 있는가?”



디지털 공간의 이미지는 상대방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믿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절실하게 드러나는 진리가 있다. 진정한 관계는 단순한 정보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가장 확실한 소통은 직접 만나 마주 앉아 눈을 바라보는 것임을.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우리에겐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카메라와 화면 사이를 의식적으로 오가며, 마음을 담아 눈빛을 맞추려는 노력이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행동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관계의 본질은 언제나 진심 어린 관심과 공감 속에 있다. 그러니 기술이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올수록, 우리는 더 의식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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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로 7월 28일부터 30일 연속 글쓰기 중입니다. 30일 뒤에 한 권의 초고를 완성하려는 도전입니다. 그러는 동안 기존 라이팅 레시피는 잠시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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