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깝게; 고맙게

[ 언어와 나의 세계 ] 28

by 정원에

자주 ‘고깝게’ 느껴진다면,

선물 상자를 받고도 상자에 붙은 테이프가 삐뚤어져 있는 것만 바라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작 선물 자체의 마음은 외면한 채, 작은 흠집에만 시선을 고정하는 태도가 기분이 되어서다.


이런 상태에서는 없는 것, 모자란 것, 서운한 것에 시선을 맞춘다. 삶의 상처를 읽어내야만 직성이 풀린다. 왜냐하면 시선의 출발점이 철저히 ‘나’이기 때문이다. ‘나’의 기대, ‘나’의 권리, ‘나’의 자존심이 세상의 중심축이며, 타인은 이 축을 중심으로 공(회)전하는 행성에 불과하다.


‘나’의 기대를 벗어나는 모든 움직임은 ‘나’의 세계를 균열 내기 위한 위협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 단정이 가장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모른 채 철옹성 같은 성벽을 급하게 구축하느라 우왕좌왕한다. 잡동사니라도 끌어다 성벽위에 올려 쌓느라 즐길 새가 없다.



항상 ‘고맙게’ 여겨진다면,

테이프가 삐뚤어진 선물 상자를 받고, 얼른 가 닿았으면 하는 선한 정성의 흔적으로 항상 받아들이는 정서를 지녔기 때문이다. 선물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주는 마음’을 발견하고, 부족함마저 수용하는 태도가 기본 이어서다.


이 정서에서는 주어진 것, 받은 것, 남아 있는 것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삶을 선물로 받아내는 본성의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의 시선은 언제나 ‘타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타인은 각자의 역사와 세계를 지닌 또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움직임은 자신의 기대를 벗어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필요한) 기대에 기대지 않는다. 타인을 자신의 궤도에 묶어두지 못한다. 아니, 서로 다른 궤도를 가진 별들이 스치며 빛을 나누는 순간순간을 잔잔히 즐긴다.


그러니

두 마음의 전환을 가르는 결정적 열쇠는 결국 ‘시선의 이동’에 있다.


하지만 이 이동은 스위치를 켜듯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나’의 자동적인 판단을 멈추고, ‘타인의 우주’를 향해 작은 질문 하나를 던져보는 용기를 발휘하는 연습말이다.



“그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견고하던 ‘나’의 성벽에 작은 문이 생긴다. 균열이 아니라 문이다. 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온 ‘타인’의 이야기가 편견 없이 들리기 시작한다. 방어와 경계로 어수선했던 마음이 차분히 정돈되는 것을 느끼면서!


철옹성을 지켜야 했던 무거운 의무감에서 벗어나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바로 그 가벼워진 마음의 빈자리에,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이 자신도 몰랐던 ‘명랑한 마음’이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과 평화의 감정 말이다.


세상살이에서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https://blog.naver.com/ji_dam_


라이팅레시피9.png


작가의 이전글공백;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