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대하여
잡담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낯익은 타인과 날씨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과 같다. 감정은 얕게 스쳐 지나가며, 일종의 ‘정서적 환기’ 정도에 그친다.
수다는 오래된 친구와 카페에 앉아 끝도 없이 떠드는 것과 같다. 감정은 깊게 교차하며, 서로의 내면을 드러내고 흡수한다.
연대에 대하여
잡담은 전철 안에서 모르는 이와 같은 사건을 흘려 이야기하며 ‘순간적’ 동지 의식을 느끼는 거다. 얇지만 그 순간은 묘한 친근감을 만든다. 수다는 밤새 친구들과 같은 사건을 놓고 욕하고 웃으며 ‘운명적’ 동지 의식을 쌓는 거다. 두께가 다르다.
환대에 대하여
잡담은 문 앞에 손님이 지나가다 들른 듯 가볍게 차 한 잔 내어주는, 현관 마중이다. 들어오라고도, 나가라고도 하지 않는다. 수다는 아예 방문을 열어젖히고 집 안 깊숙이 들여 따뜻한 밥상까지 내놓는, 안방 환대다.
치유에 대하여
잡담은 진통제 같다. 잠깐 아픔을 잊게 하지만 근본적 치료는 아니다. 그런데 계속 먹고는 싶다. 수다는 장시간 이어지는 마사지 같다. 뭉친 마음을 풀고, 울음과 웃음이 오가며 정서적 회복을 돕는다.
시작에 대하여
잡담은 땅에 흩뿌려진 작은 씨앗 같다. 어쩌다 한두 알이 싹을 틔운다. 우연한 농담이 새로운 관계나 기회를 열어주는 계기가 된다. 수다는 이미 밭을 갈고 물을 대는 행위 같다. 쌓인 이야기 속에서 ‘나도 해볼까?’라는 힘을 키운다.
그러므로,
잡담은 노크이고,
수다는 홈파티이다.
잡담은 불을 듯 안 붙을 듯한 불씨고,
수다는 뭉근하게 타오르는 장작불이다.
잡담은 새로운 우연을 낳는 작은 씨앗이고,
수다는 새로운 의지를 낳는 비옥한 밭이다.
잡담은 남이 끓인 라면에 한 숟가락 얹은 거고,
수다는 그 라면에 식은 밥까지 다 말아 먹은 거다.
잡담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수다는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시계를 들여다본다.
잡담은 갈증날 때 시원한 물 한잔 나누는 정도지만,
수다는 집에 들인 친구가 냉장고를 다 비우고 가는 것이다.
잡담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내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수다는 내 이야기와 상대의 이야기가 구분 없이 뒤섞인다.
잡담은 비 개인 아침 안개 자욱한 숲속에서 우연히 만난 청솔모이고,
수다는 깊은 숲속 여기저기서 흘러와 마침내 강의 어귀에서 뒤섞이는 개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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