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선한 사람

[ 언어와 나의 세계 ] 30

by 정원에

착한 사람은

바닷가 등대를 찾아가는 길에 세워진 이정표 같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 햇빛, 별빛, 달빛에 의지한다. 먹구름이라도 드리우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한다. 그러다 슬쩍 그 길에 주저앉아 버리기도 한다.


그들은 이정표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사실을 잘 모른다.


이정표가 길 자체를 의미하지 않고, 길 위의 모든 변수와 상황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면서 근면·성실하게 걷는다. 자주 왜 그 길로 들어섰는지 모르는, ‘길 잃은 여행자’가 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결국, 이정표는 이미 경험한 이들이 증명한 길이기 때문에 잘 따르는 게 의미가 있다고 굳게 믿는다. 자신이 쓸모 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지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은

멀리서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와 같다.


등대는 길을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둠 속에서도, 잔잔한 밤바다와 그 바다의 한 낮을 지키며, 여행자가 나아갈 궁극적인 방향을 밝혀줄 뿐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내면의 양심과 신념이라는 빛을 스스로 발하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을 소모해도 꺼지지 않으려 애쓰며, 배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일방적인 도움을 주진 않는다. 자기 몸에 빨간색을 칠해 오른쪽이 위험하다고, 흰색을 칠해 왼쪽이 위험하다고 세심하게 알려줄 뿐, 선택은 이정표를 따라 그 길에 들어선 ‘착한’ 사람의 몫이다. 낮에도 자신을 밝히는 이유다.


‘착함’이라는 이정표는 우리가 도덕적 여정을 안전하게 시작하도록 돕는 필수적인 안내서다. 그러나 우리의 최종 목표는 이정표를 충실히 따르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선함’이라는 등대에 도달하여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그 안내서를 두 손에 꼭 쥔 채 오늘도 묵묵히 걷는, ‘착한 자기’를 사랑한다. 반면, ‘선한 사람’은 자기 존재의 빛을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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