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것은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비춰보며 “나는 왜 저것보다 덜 예쁘지?”라고 묻는 꽃과 같다. 그렇게 못남은 비교의 언어에서 태어난다. 즉, 못난 것은 기능이나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다.
마치 사과 상자 속에서 ‘색이 고르지 않다’는 이유로 골라내어 지는 사과 같다. 맛이나 향은 온전하지만 기준이라는 외부의 눈금 앞에서 탈락하는 것이다.
그러니 못난 것은 존재의 결함이 아니라 평가의 산물이며, ‘시선의 낙오자’다. 그렇게 그 낙오 덕에, 나의 세상은 다채로워진다.
모난 것은
강가의 둥근돌무더기 속에 끼어 있는 날카로운 돌이다. 둥글지 않기에 물살에 부딪히고, 이리저리 굴러가며 상처를 입히면서 입는다.
하지만 그 모가 깎이는 동안은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가를 갈려 나가는 아픔으로 배우는 기회다.
마치 자신은 배라며 사과 상자 속에 함께 들어 있을 수 없다고 고집하는 사과 같다. 스스로 경계를 긋고 기꺼이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난 것은 부조화의 결과가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존재를 주장하는 형상이며, ‘질서의 저항자’다. 그러다 그 저항 덕에, 나의 세상에서 다른 길을 발견한다.
사진: Unsplash의Maxime Makhare Baqradze맞다. 못난 것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된 결함이다.
그러나 못남을 인정하는 순간, 남의 눈으로 만든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비교의 언어 속에서 자신을 용서하고 품을 수 있는 것은 결국 타인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맞다. 모난 것은 세상과 부딪히며 생겨난 자기의 각이다.
그러나 모남을 선언하는 순간, 타협 없는 신념의 흔적이자 자기만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마찰의 질서 속에서 결코 쉽게 둥글어지지 않겠다는 용기는 창조적 저항의 근원이 된다.
그렇게
못난 것은 소극적 저항을 통해 세상의 폭을 넓히고,
모난 것은 적극적 저항을 통해 세상에 깊이를 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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