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潑剌
발랄은 ‘물 뿌릴 발(潑)’과 ‘어그러질 랄(剌)’의 결합으로, 발은 ‘뿌리듯 솟구치거나 튕겨 나가는 모습’, 랄은 ‘묶여 있던 것이 풀어지며 어그러지는 모습’이다.
그 모습은
어린아이가 연신 까르르거리고,
물고기가 힘차게 물 밖으로 뛰어오르고,
눅눅한 오래된 골목에 그려진 벽화의 화사함이고,
활시위를 떠난 활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출렁거림이고,
봄날 새싹들이 앞다투어 소리 없이 피어나는 아우성이고,
오랜 가뭄으로 갈라진 틈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용천수와 같다.
이는 통제되거나 길들여지지 않은, 원초적인 생명력이 솟구치는 순간에 대한 묘사다. 여기에는 가공되지 않은 존재 본연의 기쁨과 에너지, 자연의 역동성이 핵심적인 이미지로 자리한다. 외부의 조건이나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는 내부로부터 발현된다.
발랄한 사람은 오래된 카페 문을 열릴 흔들리는 차임벨 같다. 요란하진 않지만, 퍼져 나간 그 소리에 카페를 채운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발랄함은 주변의 공기를 바꾼다.
명랑明朗
명랑은 ‘밝을 명(明)’과 ‘밝을 랑(朗)’의 결합으로, 명은 ‘빛이 환하게 비치는’, 랑은 ‘밝고 맑음’ 상태를 나타낸다.
그런 마음은
주름이 깊게 팬 노인의 잔잔한 미소에서,
흐린 날에도 커튼을 걷고 햇살을 들이는 손끝에서,
비에 젖은 나뭇잎 사이로 다시 반짝이는 햇살에서,
바람이 멈춘 뒤 고요히 반사되는 호수의 얼굴에서,
스스로 무릎을 털고 일어서는 아버지의 의연함에서,
혼돈 속에서도 지켜내는 고요한 새벽의 소박한 의식에서 보인다.
이는 타고난 에너지의 분출이라기보다 삶의 굴곡을 통과하며 스스로 빚어내는 정서이다. 그래서 명랑은 단순한 기분 상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흘러 나오는, 고통과 권태를 통과한 자가 더 묵직해지는 관조의 언어다.
명랑한 사람은 오래된 카페의 따뜻한 조명 같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빛 아래서는 사람들의 얼굴이 편안해지고 세상에 대한 신뢰가 조금은 회복된다. 그렇게 명랑함은 주변의 사람을 바꾼다.
사진: Unsplash의Efren Rojas
저 모습과 이 마음이 합쳐진다면,
발랄은 긴 연휴의 설레는 시작이고,
명랑은 잘 쉰 연휴끝의 시작에 대한 감사이다. ❤️
https://blog.naver.com/ji_dam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