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 절제

[ 언어와 나의 세계 ] 51

by 정원에
사진: Unsplash의Tim Mossholder

인간은 죽기 전까지 욕망한다. 욕망은 언제나 몸에서 시작된다. 식욕, 성욕, 소유욕, 성취욕.....그런데 이 모든 욕망은 언제나 ‘걱정’과 함께 태어난다.



너무 먹으면 병이 날 텐데, 너무 놀면 게을러질 텐데, 너무 일하면 몸부터 망가질 텐데, 너무 원하면 무너질 텐데, 너무 줘버리면 손해볼 텐데...



그러다 자신이 만든 자동차로 더 빨라진 속도감에 놀란 인간은 몸의 욕망을 다스리는 두 개의 기술을 만들었다.



바로 ‘신중prudence’과 ‘절제temperance’. 이 두 가지 기술은 인간이 어떻게 홀로 걱정 시뮬레이션 과정을 겪는지를 비교해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신중한 인간이 ‘과속하면 딱지 끊고 벌금을 내야’하는 걸 걱정할 때,

절제하는 인간은 ‘내가 여기서 속도를 내면, 뒤따라오는 운전자들이 나를 난폭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신중한 인간이 ‘골목길에서 빨리 달리다 아이가 튀어나오면 사고’가 날 것을 걱정할 때,

절제하는 인간은 ‘골목길에선 천천히 가야 해. 내 차 소음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은 동네 사람들이 불편해질 거야’라며 걱정한다.


신중한 인간이 ‘경적을 울릴까? 빨리 비키게 해야 내 시간을 아낄 수 있을 텐데’라고 걱정할 때,

절제하는 인간은 ‘굳이 경적을 울릴 필요는 없겠지. 앞차 운전자가 놀라거나 모욕감을 느껴 차를 멈추거나 내게 다가올 수도 있어’라며 걱정한다.


신중한 인간이 ‘지금 추월해 봤자 얼마 차이도 안 나. 괜히 기름만 더 닳아’라고 걱정할 때,

절제하는 인간은 ‘다들 정속 주행하며 질서 있게 가고 있는데, 나 혼자 추월해 이 흐름을 깨뜨리는 건 옳지 않아’라고 걱정한다.



신중한 인간이 ‘잘못 세웠다가 주차 단속에 걸리면 돈이 아까워’라고 걱정할 때,

절제하는 인간은 ‘비상등을 켜고 잠시 정차하더라도, 다른 차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곳에 새워야 마땅하지’라며 걱정한다.


신중한 인간이 ‘저 차 끼워주다가 내 뒤 차가 와서 박으면 나만 손해야’라고 걱정할 때,

절제하는 인간은 ‘내가 조금 양보해서 도로 전체가 원활하게 소통되도록 하는 편이 낫지. 뒤차도 이해해 줄 거야’라며 걱정한다.


신중한 인간이 ‘상향등을 켜야 내 시야가 더 잘 확보돼서 안전해’라고 걱정할 때,

절제하는 인간은 ‘그렇다고 마주 오는 차 운전자의 눈을 부시게 할 수는 없지. 사고의 위험성도 있고’라며 걱정한다.


신중한 인간이 ‘웅덩이를 그대로 밟고 지나가면 차 하부에 무리가 갈 수 있어’라고 걱정할 때,

절제하는 인간은 ‘흙탕물이 튀어서 길 가는 행인이 낭패를 보면 안 되겠지’라며 걱정한다.



그렇게,

신중한 인간은 욕망을 억누르지 않는다. 다만, ‘건강과 재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조율할 뿐이다. 즉, ‘살기 위해’ 조심하는 몸의 이성적인 반응이다.


반면,

절제하는 인간은 몸의 욕망을 외부의 기준에 두지 않는다. 대신, ‘체면, 적정성, 세심, 겸허’와 같은 내면의 품격에 묶어 둔다. 즉, ‘아름답게 살기 위해’ 조심하는 정신의 이상적인 적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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