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분자

[ 언어와 나의 세계] 53

by 정원에

원자(Atom, 原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존재의 최소 단위다. 분자(Molecule, 分子)는 그 원자들이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연결된, 관계의 단위다. 이 둘의 차이는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의 태도 차이에서 드러난다. 둘 다 ‘친구’ 같다.


원자 같은 친구는 혼자서도 완전하다. 다른 것에 기대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 꼭 내가 없어도 될 것만 같다. 왜냐하면 고독을 즐기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 틈에서도 자기중심을 잃지 않는다. 혼자 밥을 먹을 줄 알고, 혼자 여행할 줄 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단단해서 누군가가 다가와도 결합할 틈을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원자 같은 친구는 ‘곁에 있어도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자기 안의 우주에 머무는 존재. ‘난 너 없인 못 살아’가 아니라 ‘너 없이도 살지만, 있으면 더 좋지.’라고 말하는 친구다.



분자 같은 친구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먼저 찾아 준다. 한참만에 목소리를 전하면서도 좀 전에 무언가 묻다 말은 것처럼 말한다. 잠잘 때 빼고는 혼자 있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언제나 자기 틈을 먼저 내어주느라 분주하다. 그는 그렇게 늘 두 개 이상의 원자와 만나, 서로의 결핍을 나누며 다른 하나의 체계가 된다.


분자 같은 친구는 공감하고, 섞이고, 변화한다. 때로는 붙었다 떨어지며 상처를 주고받지만,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성질이 생겨난다.


폭발적인 성격의 원자(수소)와 차분한 원자(산소)가 만나면 ‘물’이라는 부드러운 관계가 되듯 ‘너와 함께할 때,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된다.’. 그 친구의 아름다운 불안정성이다.


사진: Unsplash의The New York Public Library

결국,

원자적 우정은 자립의 철학이다. ‘나는 너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존중한다.’ 존재의 경계를 지키는 우정이다.


분자적 우정은 관계의 철학이다. ‘나는 너로 인해 변화한다.’ 서로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성질을 만들어낸다.


'부탁하기를 기다리지 않고'(주1) 친구를 위해 기꺼이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을 스스로 하는 마음이다.



친구란,

원자처럼 단단해야 하고 분자처럼 유연해야 한다. 너무 고립되면 닫히고, 너무 엉기면 사라진다. 좋은 우정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반응하는 화학작용처럼,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성질을 바꿔 주는 관계다.



_주1) 데카메론, 조반니 보카치오, 민음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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