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감동(感動) 이다!’라고 말할때 그 안에는 감동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행복하다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왜일까? 그건 ‘감(感)’과 ‘동(動)’이라는 두 글자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먼저 느끼고(感), 그 울림이 행동(動)으로 이어져야 제대로 된 감동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렇게 감동은 느낌(심장)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반드시 몸(발)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다.
우리는 발을 굴려 달릴 때 심장이 더 거세게 뛰는 것을 느낀다. 반대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설렘을 느낄 때 우리 발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론가 향하게 된다.
이처럼 느낌은 행동을 부르고, 행동은 다시 더 깊은 느낌을 데려온다. ‘감동’이란 단어 속에 심장의 떨림과 발의 분주함이 하나로 묶여 있는 이유다.
자동차는 연료가 가득 차 있어도 스파크가 튀지 않으면 엔진은 깨어나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감(感)’은 바로 그 스파크와 같다.
잠시 눈을 감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상상해 본다. 배고픔도, 추위도, 타인의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침대에서 영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배고픔을 느껴야 밥을 지으려 움직이고, 추위를 느껴야 옷깃을 여미고, 타인의 아픔이 내 마음에 닿아야 비로소 위로의 손길을 건네게 되는 것이니까. 즉, ‘느낌’은 나를 멈추지 않게 하고 계속해서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시동 스위치다.
하지만 스파크만 튀고 엔진이 돌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배고픔을 느끼고도 움직이지 않으면 굶주림만 남고, 사랑하는 마음(感)이 있어도 안아주거나 표현하는 행동(動)이 없으면 그 사랑은 실체가 없어진다.
75℃의 물은 눈으로만 봐서는 그 온기를 알 수 없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거나 입으로 ‘후’ 하고 불어 보는 행동(動)이 있어야 비로소 그 뜨거움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동(動)’은 막연했던 ‘느낌’을 선명한 현실로 완성해 준다.
앞서가는 사람이 흔들리는 돌을 밟고 위험을 감지(感)한다. 그는 즉시 뒷사람에게 “조심해!”라고 외치며 손짓(動)한다. 뒷사람은 그 움직임을 보고 안전하게 발을 내딛는다. 앞사람의 ‘감’과 ‘동’이 뒷사람의 안전한 ‘삶’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이것이 우리 삶의 징검다리에서 감동이 필요한 진짜 이유가 아닐까?
‘감’과 ‘동’은 어려운 철학이 아니다. 세상의 신호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열린 심장, 그리고 그 마음에 응답하여 기꺼이 나서는 부지런한 움직임이 다다.
뒷사람을 위해 육중한 문을 잡고 있을 때 보이는 미소, 들리는 소리, 또 대신 잡아주려 달려드는 이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맞다. 지금 마음이 무언가에 반응해 ‘쿵’ 하고 울렸다면, 망설이지 말고 움직인다. 심장이 발을 밀어내고, 그 발걸음이 다시 심장을 뛰게 한다.
그렇게 그 뫼비우스의 띠 같은 울림이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아름다워질 테다. 행동해야 감동이 깊어진다. 느끼기만 하면 감상에 빠질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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