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잠깐 바로 누웠다가 왼쪽으로 모로 한번, 오른쪽으로 모로 한번 몸을 돌려 누웠을 때 어느 순간 잠이 든다.
바로 누워 천장을 응시하다 잠든 적은 기억에 거의 없다.
잠 못 드는 밤, 이불속에서 일어나는 ‘뒤척임’은 몸의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한 자아와 휴식을 갈망하는 본능 사이의 치열한 대화다.
그러고도 잠에 깊게 빠진 사이, 수없이 이리저리 뒤척인다.
요가 틀어져 있고, 이불이 벗겨져 있고, 베개가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그 증거일 거다.
잠의 깊이에 상관없이 왜 죽은 듯 고요히 바로 눕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세를 바꾸는 걸까?
바로 눕는 것은 가장 무방비한 자세다. 들숨과 날숨에 벌렁거리는 가슴과 배를 하늘(천장)을 향해 활짝 열어두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중력에 의한 압박감이 크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자세는 마치 “나는 숨길 것이 없다”라고 선언하는 용기를 내는 것과 같다. 취했을 때 마음껏 뿜어져 나오는 그 용기 말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런 자세로 잠드는 날이 거의 없는 걸 보면 그런 용기가 나질 않는 게 분명하다.
게다가 마음에 걸리는 근심이나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면, 바로 누운 자세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천장은 스크린이 되어 그것들을 연신 상영하고, 그 안에서 날카롭고 냉정한 대사들이 지닌 낱말들이 가슴으로 배로 쏟아지는 압박감은 특히, 답답한 날 바로 눕기를 포기하게 만든다.
바로 누웠다가 모로 눕는 반복되는 ‘뒤척임’은 ‘나’에게 맞는 영혼의 안식처를 찾는 과정이다. 캠핑 때처럼 뾰족한 자갈밭 위에서 텐트를 칠 평평한 자리를 찾는 것처럼!
생각의 모서리가 '나'의 등을 찌르지 않는 각도, 근심의 무게가 덜 느껴지는 각도를 찾아 몸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니, '뒤척임'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거친 파도 속에서 배가 전복되지 않으려 중심을 잡는 ‘복원력’의 몸부림이다.
바늘을 꽂아 놓고 이것저것 달아 놓은 환자는 바로에서 모로 뒤척이지도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결국 가장 건강할 때, 좀 더 아늑함을 찾아 잠에 빠져드는 자세가 ‘모로 누운’ 자세인 거다.
왜 그럴까?
우선, 나를 세상과 차단하기 위해서다. 세상(천장)을 향한 ‘시선’을 벽이나 바닥, 이불속으로 옮겨 잠시라도 세상과의 연결을 끊겠다는 심리적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편안했던 ‘짙은 어둠의 아방궁’에서 열 달 내내 유지했던 가장 원초적인 자세에 대한 영혼 기억의 재현일 뿐이다.
‘모로’ 눕는 것은 비겁한 도피가 아니라, 내일 다시 세상과 맞서기 위해 잠시 웅크려 에너지를 모으는 ‘쉼표’의 자세다.
건강할 때, 마음껏 뒤척이자. 나의 아이들이 그랬듯이, 나도, 이제라도 쉬지 않고 태양을 감아 도는 이 별을 따라 온 방을, 침대 구석구석을 돌고, 또 돌아 보자.
오늘 밤도, 모로 누워 잠을 청한다면 그것은 '그때처럼' 다시, 내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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