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의자만큼 인간이 무력해지는 곳이 또 있을까.
뼈를 깎을 듯한 기계음보다 더 공포스러운 건, 날카로운 도구가 내 신경을 건드려 ‘생(raw)’ 고통을 줄지 모른다는 예감이다.
그때 의사가 놓아주는 마취 주사는 단순한 진통제가 아니다.
그것은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 현실(입)을 벌리게 만드는 유일한 용기다.
‘통증’이 기본값인 삶이라는 수술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매일 아침 신경을 긁는 알람 소리, 만원 버스에서의 불쾌한 마찰, 미래에 대한 만성적인 불안까지. 매 순간 ‘맨살’로 뾰족한 자갈밭을 걷는 듯한 쓰라림을 견딘다.
맨정신으로만 버티기에 삶은 지나치게 고자극이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스스로에게 마취제를 연신 처방한다.
‘도파민’이라는 국소 마취: 퇴근 후 소파에 누워 뇌의 회로를 끊어버리는 1분짜리 숏폼 영상들.
‘소비’라는 속성 진통제: 뜯는 순간 공허함을 덮어주는 택배 상자의 테이프 소리.
‘관계’라는 천연 마취제: 타인의 체온에 기대어 나의 고독을 잠시 잊는 행위.
‘화학’적 진정제: 쓰린 속을 달래는 알코올과 억지로 뇌를 깨우는 카페인.
이처럼 적당히 마취된 채 사는 삶을 두고 ‘가짜’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비겁한 도피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고도의 전략이다.
통증은 본래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라고 알리는 신호다. 하지만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사이렌이 울린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릴 것이다.
수술을 위해 마취가 필요하듯, 삶을 지속하기 위해선 ‘적당한 무감각’이 필수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용량 조절’인 것이다.
너무 깊게 마취되어 내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잊는 ‘중독’도 위험하지만, 맨몸으로 모든 고통을 받아내려는 태도 역시 무모하다.
경계해야 할 것은 마취 자체가 아니라, 마취가 영원히 깨지 않아 진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상태다. 늦은 밤, 스마트폰을 끄고 정적이 찾아올 때 문득 밀려오는 허무함과 욱신거림. 사람들은 이 순간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다.
“아, 마취가 풀렸구나. 내 감각이 아직 죽지 않았구나.”
마취가 풀린 후 진통이 다시 시작이 되어도 최소 4시간의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마약에 중독되지 않을 수 있도록 ‘반감기’를 충분히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통제의 약효가 떨어져야 상처가 아물었는지 덧났는지 확인할 수 있듯, 마취가 풀리는 그 욱신거리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병상을 벗어난 일상도 마찬가지다.
마취에서 깬 후 다시 진통이 일어나는 건, 정말 다행인 것이다.
삶의 진통을 이겨내는 핵심은 마취가 풀리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마취가 풀려야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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