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밥상 위에는 매일 ‘하루’라는 식재료가 올라온다. 갓 잡아 올린 날것의 하루는 때로는 거칠고 밋밋하며, 어떨 때는 너무 써서 삼키기조차 힘겹다.
그렇기에 틈만 나면 이 날것의 시간에 갖은 ‘양념’을 하려고 애쓴다. 단순히 허기를 채우듯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맛깔나고 품위 있게 향유하고 싶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시도다.
어떻게 하면 이 반복되는 일상을 깊은 맛이 나는 요리로 바꿀 수 있을까? 그 비밀은 우리 음식의 지혜인 ‘양념’과 ‘고명’ 속에 숨어 있다는 생각을 요즘 새삼 많이 한다.
우리말 ‘양념’은 한자어로 ‘약념(藥念)’이라고 표기한다. 즉 ‘먹는 사람의 몸을 생각하며 넣는 약’이라는 뜻이다.
‘생(生)사람’을 포함해,
모든 날것에는 자기 본성을 지켜내려는 ‘독성(毒性)’이 있다.
흔히 ‘약이 바짝 올라’ 있는 상태면 독성이 강할 때이고,
삶아서, 쪄서, 볶아서, 양념으로 버무리면
그 독성을 약성(藥性)으로 이용할 수 있다.
생사람들의 '양념'의 지혜는 분명
소금에 충분히 절여진 배추가 쉽게 무르지 않듯,
확고한 가치관으로 잘 ‘양념된’ 이는 세파에도 쉽게 상하거나 변질되지 않고,
슬픔이라는 소금과 열정이라는 매운맛이 적절히 섞일 때,
사람은 깊어지고 정신은 단단해진다는 진리를 전해주는 것일 거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갓 태어난 아이나 앓고 있는 환자의 음식에서 자.극.적.인. 양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무리 좋은 약념도 몸과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영혼이 너무 지치고 아플 때는 억지로 맛을 내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에서 닥친 사건이 ‘날것의 재료’라면,
양념은 그것을 해석하는 ‘마음의 태도’다.
건강할 때는 쎈 양념도 약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늘 먹던 양념도 독이 되듯이 마음이 너무 약해져 있을 때는 그 어떤 긍정의 해석도, 의미 부여도 독이 될 수 있다.
그럴 땐 억지로 힘을 내어 버무리기보다, 그저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며 슴슴하게, 심장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절대적 휴식’의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슴슴한 게 영혼이 휴식하는 맛이다.
양념이 삶의 맛(본질)을 담당한다면, 고명은 삶의 멋(품격)을 완성한다. 음식 위에 살포시 얹은 잣이나 실고추는 영양학적으로는 작을지 몰라도,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이 음식은 당신을 위해 정성껏 준비되었으며, 오롯이 당신의 것이다”라는 존중과 배려의 봉인(封印)이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겉치레보다는 내면의 건강을 다지는 양념이 우선이지만, 타인을 대하는 단정한 태도와 매너라는 고명이 얹어질 때 비로소 그 사람은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 내면만 중요하다고 겉모습을 함부로 하거나 무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분명, 살다 보면 언제든 재료가 좋지 않은 날도, 때론 양념이 과해 짜게 식어버린 날도, 고명으로만 얄팍하게 승부하고 싶은 유혹의 날도, 그마저도 먹을 수 없는 날도 수없이 만나게 된다.
그러니, 맛이 밍밍해도 괜찮다. 멋지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 앞에 놓인 ‘하루’라는 재료를 포기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버무리고 다듬어 내놓으려는 ‘나’의 태도다.
그렇게 차려낸 오.늘. 내 앞에 앉은 ‘당신’의 식사는 단순히 때우는 한 끼가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는 만찬이 될 거다.
백 년을 산다면 약 10만 9천 번의 식사를 하게 된다.
남은 식사가 몇 번일지 미리 세어보는 시간에, 내가 매일, 매끼 내 밥상을 차리는 유일한 ‘셰프’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세상 끝까지 함께 가려는 태도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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