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것’이 선(善)이고, ‘지는 것’은 손해이거나, 무능력 심지어는 악(惡)이라고 익히며 산다.
하지만 우리말 ‘지다’를 가만히 굴려보면, 그 안에는 인간의 승패를 넘어선 거대한 우주의 원리가 숨어 있다.
낙엽마저 다 저 버린 요즘, 봄날의 벚꽃을 새삼 떠올려 본다.
모진 추위와 어둠을 견뎌내고 피어난 꽃지만, 불과 며칠 만에 속절없이 진다. 봄비라도 내리면 그 속도는 야속할 만큼 빠르다.
얕은 ‘나’는 그것을 보며 소멸이라 아쉽다고 탄식했지만 가만히 벚나무의 깊은 마음으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꽃이 욕심을 부려 가지에 계속 매달려 있다면, 결코 열매가 맺힐 자리가 없다. 꽃은 열매를 위해, 다음 생명을 위해, 미련 없이 자신의 화려함을 내려놓고 져주는 것이었다.
봄은, 매년 여름에게 진다. 그 덕에 여름의 녹음(綠陰)이 우거진다. 하지만 마냥 우거질 것 같은 녹음도 어김없이 가을에 진다. 낙엽이 되어 끝까지 진다.
그 낙엽마저 모조리 져주면서 나무는 겨울을 날 에너지를 비축하고, 다시 꽃을, 열매를, 녹음을 그리고 낙엽을 기약한다.
겨울이 기꺼이 져주기에 봄이 오고, 봄이 여름에게 져주기에 곡식이 익는다. 자연에게 ‘지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다음 주자를 위한 배려이며, 생명을 이어가는 바통 터치이며, 생의 순환이다.
그렇게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것이 제대로 ‘지는 것’이라는 우주의 원리를 알려 준다.
종종 사소한 말다툼 끝에 말에 지는 것을 자존심 상해했다. 하지만 내가 말로 상대를 이겨먹으려 하면 관계는 어김없이 금(線)이 간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그래, 네 말이 맞아”라고 져줄 때, 관계는 오히려 금(金)이 된다. <1984>에서 ‘같은 패배여도 더 나은 패배가 있는 법’이라고 한 조지 오웰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패배는 부자지간에서 발견된다. 팔씨름을 하든, 달리기를 하든 아빠는 성장하는 어린 아들을 위해 기꺼이 져준다. 그렇게 자신감이란 열매로 성장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된 아빠는 진짜로 지게 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빚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 ‘나’의 빈틈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일종의 져주는 태도다. 그 틈 사이로 사람의 온기가 스며든다.
‘나’도 자연이다. 그러니 자연이 지는 원리를 ‘나’의 삶에 가져오면,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살 수 있을 거다. 아니, 오히려 자연보다 더 나은 점은 ‘나’란 사람이 물러선 자리에 ‘우리’가 피어난다는 것이다.
매일 ‘해’는 서산으로 지며 달에게, 별에게 밤을 내어준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지는 게 좀 더 익숙해지지 싶다.
'해'가 가르쳐주는대로 '나'는 오늘도 하루 더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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