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오늘 아빠는 우리에게 <국부론>의 저자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다가 고대 철학자 에픽테투스의 문장 앞에 한참을 머물렀단다.
배를 띄우기 전에는 최선의 선박과 항해사를 고르고 좋은 날씨를 기다리지만, 일단 폭풍우가 몰아치면 그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그 담담한 이야기에.
사실 이 문장을 읽으며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하게 되는구나. 아빠는 오랫동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았거든.
이미 쏟아진 물 같은 상황 앞에서, 왜 날씨가 도와주지 않느냐고 하늘을 원망하거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이나 결과에 매달려 정작 내가 해야 할 ‘준비’를 놓치곤 했지.
이 문장은 아빠에게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가져야 할 두 가지 큰 태도를 가르쳐주고 있어.
첫째는, 나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겸손함이란다. 에픽테투스가 말한 ‘신중’과 ‘적정성’은 거창한 도덕적 구호가 아니야.
‘신중’은 자기 사랑의 감정이 긍정적으로 승화되는 거야. 나태하지도, 그렇다고 오만하게 자연을 거스르지도 않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배려하는 것이지.
그것은 항해를 떠나기 전, 배의 밑바닥을 꼼꼼히 살피고 노련한 사공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겸허하게 좋은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지.
‘적정성’은 스미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개념이란다. 우리가 행동을 결정하는데 미치는 두가지는 ‘이익’과 ‘타인의 시선’이잖아. 이 둘 사이에서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상황에 딱 들어맞는 감정의 도수’이지.
아빠는 예전에 “이 정도면 됐지”라며 적당히 타협하고는, 나중에 폭풍이 오면 운이 없었다고 핑계를 댔단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자체가,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신들의 원칙’이라는 것을 말이야.
둘째는, ‘하늘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용기란다.
배가 감당할 수 없는 폭풍이 올 때, 에픽테투스는 “나는 어떤 걱정도 하지 않는다”고 했어. 그런데 이 말은 포기가 아니라 ‘해방’으로 느껴져.
내가 선택한 배와 항해사, 그리고 내가 기다린 날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면.! 그 이후의 결과는 더 이상 나의 영역이 아니니까 홀가분해져야 한다는!
아빠는 이 대목에서 큰 위로를 받았어.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나의 노력이 가치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마음을 쏟는 것은 내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배우고 있단다.
조금 더 ‘신중’하고 ‘적정성’을 찾기 위한 연습을 부단히 하다 보면, 에픽테투스의 말처럼 되지 않을까?
사랑하는 아이야,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주피터’의 정체는 단순한 신화 속 신이나, 특정 종교적 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오히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우주의 거대한 필연성 혹은 객관적 현실 그 자체이겠지. 내가 아무리 선하고, 신중하고, 적정해도 바다는 뒤집힐 수 있으니까!
그래서 스미스는 ‘태연한 냉담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이 말은 차가운 무관심이 아니라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지혜로운 수용이지. 삶의 항해에서는 언제나 노력이 결과로 치환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개입하게 된다는 조언.
스미스는 <국부론>보다는 <도덕감정론>에 대한 애착이 더 컸다고 해. 그건 어쩌면 자신의 수많은 항해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자신의 도덕적 감정을 다스리는 것의 중요함을 깨달아 내린 결론이지 않을까?
그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 바로 ‘책임의 경계선’이지.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선명한 선긋기!
항해를 위해 선박을 고르고, 정비를 하고, 날씨를 살피는 것은 ‘나의 이성’이 할 일이지. 즉, 항해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의 과정에 투입되는 ‘성실함’과 ‘도덕적 결단’만이 ‘나’의 영역이라는 뜻이야.
맞아. 너의 앞날에도 수많은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거야. 거대한 폭풍우도 반드시 일어날 테고. 그럴 때, 네가 조종할 수 있는 키(Key)는 단단히 잡되, 네가 바꿀 수 없는 파도의 높이 앞에서는 의연해졌으면 좋겠구나.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은 이미 다 하였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실하게 준비하고, 그 후에는 어떤 폭풍이 몰아쳐도 너의 평온을 잃지 말거라. 사람들의 반응(주피터)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스스로 사유의 신중함(너만의 항해술)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 이득이지.
아빠도 오늘 이 문장을 필사하며,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집착'을 조금 더 내려놓아 보려 한다. 플랜B는 고사하고 플랜C, 플랜D로 살아야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거든.
우리 같이 연습해 보자!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로부터는 자유로워지는 그 멋진 기술을 말이야.
너의 모든 항해를
바다 건너에서 응원하는 아빠가.
공연관람 및 [엄마의 유산]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에 신청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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