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예상

[ 언어와 나의 세계 ] 114

by 정원에

날카로운 가시에 손가락이 찔리는 순간을 떠올려 본다.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물리적 통증은 아주 짧고 명료하다.


“앗, 따가워!” 하는 찰나의 감각, 그것이 육체가 감당해야 할 실체적 고통의 전부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 가시에 찔린 직후, 마음은 재빨리 시간을 되감는다.

‘왜 하필 거기를 짚었을까’, ‘조심하지 않았던 탓이다’라는 회상(回想)이 시작되는 순간, 찔린 상처는 단순한 통증을 넘어 후회와 자책이라는 무거운 짐으로 변질된다.

동시에 마음은 시간을 앞질러 달려간다.

'상처가 덧나면 어떡하지?', '이 손으로 내일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예상(豫想)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고통까지 현재로 끌어와 미리 앓게 만든다.


‘나’를 찌르는 것은 가시가 아니라, 스스로 키운 이미지다.


삶을 짓누르는 고통의 대부분은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이 아니다. 지나간 시간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회상’의 늪과, 오지 않은 시간을 미리 당겨와 겁을 먹는 ‘예상’의 감옥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회상은 이미 소멸한 과거의 재를 다시 태우려 하는 것이고, 예상은 실체 없는 그림자와 싸우는 섀도우 복싱과 같다.

육체는 지금 이 순간, 1초의 통증만을 견디고 있는데, 정신은 10년 전의 상처와 10년 후의 불안을 모두 짊어지려 하기에 삶이 버거워지는 것이다.

과거의 그림자(회상)와 미래의 안개(예상)를 걷어내고 나면, 현재 닥친 고통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충분히 견딜 만한 크기로 줄어든다.

해질녘의 그림자는 실물보다 훨씬 길고 거대하다. ‘현재’라는 태양 아래 정직하게 서 있으면 고통의 크기는 딱 내 몸집만 하다.


하지만 과거로 뒷걸음질 치거나 미래로 도망치려 할 때, 고통은 ‘시간의 그림자’가 되어 거대하게 덮친다. 그렇게 고통은 ‘사건’이 아니라 ‘시간’ 속에 기생한다.


‘나’란 인간의 위대함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무감각함에 있지 않다. 고통속에서도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하며,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공포가 현재를 잠식하지 못하게 막아 내는 정신의 힘에 있다.


그것은 호랑이한테 물려간 뒤 차릴려는 정신이 아니라, 호랑이한테 물리지 않기 위해 현재를 응시하는 신중함에서 시작된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나'를 정말로 아프게 하는 것은 뾰족한 가시가 아니라 그 찰나의 통증에 '어제'라는 후회와 '내일'이라는 불안을 덧대어 고통의 부피를 늘리는 마음의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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