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그래도

[ 언어와 나의 세계 ] 113

by 정원에

여기, 희망이 넘치는 섬이 있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살 수 없는 천국 같은 섬!

그래도島

이 섬이 가장 큰 인기를 얻는 건 삶을 배울 수 있는 ‘학군學群’ 때문이다. 지금부터 이 섬에 살아야만 다녀볼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소개해 본다.


<마음이 열린이집>

이 어린이집은 난생처음 집을 떠나는 아이들의 첫 학교다. 이곳에선 세상에 겁먹어 웅크렸던 아이들이 사랑의 온도로 마음의 빗장을 푼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집보다 즐거운 곳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덕분에 아이들은 ‘엄마’를 떠나 있는 게 두렵지 않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랑 덕분에 ‘나’를 환대하는 타인이 있다는 것, 즉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첫 믿음을 배운다.


<유일 유치원>

유치(幼稚)한 행동을 고치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 각자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唯一)’한 존재임을 서로를 통해 발견하는 곳이다.

질투하지 않고 서로를 응원하기만 하는 곳. 유치한 싸움 대신 연대의 박수를 보내는 법을 배운다. 그러면서 남과의 비교는 내 안의 보석을 꺼내는데 평생 방해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초심 초등학교>

모든 배움의 처음(初)을 다루지만, 더 중요한 건 언제 어느 때나 ‘끝’에서도 다시 꺼내 볼 ‘초심(初心)’을 보관하는 법을 배운다.


이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대부분 실패는 끝이 아니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시작할 수 있는 ‘권리’ 임을 잘 알고 있다.

<감도 중학교>

사춘기라는 격랑 속에서 휘청이지 않도록 자기 내면의 ‘중심(中心)’을 잡는 법을 익힌다. 그러는 동안 사춘기는 벼슬이 아니라 ‘도덕’의 형성을 위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훈련기라는 사실을 태어나 처음으로 깨닫는다.

학교 명칭이 감感도道인 이유다. 이 훈련 기간을 잘 통과하게 되면 남의 시선에 흔들리는 어정쩡한, 무색무취의 ‘중간자’가 아니라 언제나 ‘시도’하려는 열정을 지니게 된다.



<용고 고등학교>

10대의 마지막을 성적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고백(告白)’의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이 마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싶다. 나를!’,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사랑은 본능인가 의지인가?’ 등과 같은 자기 질문을 통해 학교 이름처럼 진실한 고告백이 가장 높은 수준의 용勇기임을 체화한다.

재학생들은 자신의 학교를 ‘용고’라고 줄여 부르기를 좋아한다. ‘용기를 내게 만들어 주는 고등학교’라는 자부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학 진학률은 60%가 조금 넘는다. 대학을 대신할 다양한 경험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다양하다는 진리에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담 대학교>

가장 많은 대학 진학생들이 선택하는 대학교다. 쓸모없는 지식을 얻으려기 보다, 세상을 향해 ‘대담(大膽)하게 나아가는 기개를 연구한다.

자신만의 등불을 들고 어두운 밤바다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을 전공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전공을 마치고 나면, 이 대학을 나온 누구나 ’탁월함‘이라는 학위를 받게 된다.


<캡이어>

대학 교육을 마친 이들은 1년간의 ‘캡이어 Cap year’ 인턴쉽이 의무다. 이 인턴십 때문에 대학을 가려는 10대들도 많다. 10대 때 기르지 못했던 것들과 20대를 살아갈 때 필요한 역량들을 현장에서 경험하면서 키워보는, 다음과 같은 활동이 넉넉하게 주어진다.


C : Challenge (도전) - 낯선 파도에 몸을 던지고,

A : Assurance (자기 확신) - 그 속에서 나의 쓸모를 확신하며,

P : Peace (내면의 평화/안정) -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는 닻을 내리는 법을 익히다!

그렇게 CAP Year는 도전을 통해(C) 확신을 얻고(A), 건강한 멘탈(P)을 구축하여 롱런할 기반을 닦은 시간이 된다. CAP이 되어 들어가는 사회는 더 이상 전쟁터가 아니다.


다양한 역할로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살다 보면, 마음이 깎여나가는 건 이 섬 ‘그래도’에서도 정도만 약할 뿐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중년, 장년, 노년을 지나면서 늘 도움을 받는 곳이 있어 다행이다.


그곳은 바로 <회복 커뮤니티><노을치원>

<회복 커뮤니티>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그래도안에 있는 약자들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제공할 수 있다. 이곳에서 노동은 소모가 아니라 자기 가치, 존재의 증명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이런저런 이유로 깎여 나간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경험한다.

이 커뮤니티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노을치원> 출신들의 어르신들이다.

생의 마지막 수업을 듣는 이곳은 늙어가는 곳이 아니라, 가장 찬란한 ‘노을’을 함께 감상하는 정원이다.


매일 정원에 모여 앉아 지나온 삶의 모든 굴곡이 아름다운 풍경이었음을 자랑한다. 증명한다. 그리고 노동으로 보여준다. 그러는 동안 서로의 눈빛으로 확인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은 <노을치원>으로 모인다. 이곳은 저무는 곳이 아니라, 하루 중 가장 화려한 빛을 내는 노을처럼 삶의 흔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곳이다.


자신의 주름살이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삶의 파도를 견뎌낸 ‘물결’ 임을 서로의 눈빛으로 확인한 다. 그들은 말한다.

“지나온 모든 슬픔도 멀리서 보니 아름다운 풍경이었노라”

이 섬의 주민들은 길을 잃지 않는다. 모든 길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道

다市

잘 살아보구區

말동말동洞

자주 심호흐邑

하面

다 이루어지리里 2026번 길


하지만 이곳에서도 주의해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때무니(泥)’라는 늪이다. 보통 짧은 독서를 통해, 여행 중에 들른 외지인들이 빠진다.


‘부모 때문에’, ‘가난 때문에’, ‘건강 때문에’, ‘환경 때문에’...


이 ‘때문에’라는 무거운 돌덩이를 주머니에 넣은 채 ‘때무니’를 건너려는 순간, 더 깊은 원망의 늪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 늪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그래도> 주민들이 서로 던져주는 밧줄, ‘덕분이어유(維)’를 잡는 것이다. “당신 덕분에”, “그 시련 덕분에”라고 말하는 순간, 밧줄은 다시 단단한 <그래도>의 땅으로 끌어올려 준다.

‘나’는 아쉽게도 <그래도>에서 학교를 마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섬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

올해는 더욱 <그래도>에서 오래오래 같이, 잘 살았으면 한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삶이라는 학교의 유일한 입학 조건은 완벽함이 아니라, '때문에'라는 원망의 늪을 '덕분에'라는 밧줄로 건너내는 '그래도'의 용기이다.”


https://blog.naver.com/ji_da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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