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지면

[ 언어와 나의 세계] 118

by 정원에

매끄러운 환한 유리 액정 위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손가락 끝에 닿는 감각은 오직 차가운 매끈함뿐이며, 그 위를 스치는 정보들은 마찰 없이 흘러내린다.


스스로 빛을 내는 ‘화면(畵面)’은 눈을 현혹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삶의 시선을 밖으로 유인하는 ‘외면(外面)’의 도구다.


그렇게 쏟아지는 빛 속에서 시간은 휘발되고, 정신은 안락한 의자에 파묻힌 채 흘러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관객이 된다.

반면, ‘지면(紙面)’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누군가 빛을 비추어주어도 그 속살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종이의 거친 질감은 손끝에 미세한 저항을 남기며, 한 장을 넘기는 행위에도 때로는 물리적, 정신적 무게가 실린다.

활자는 흐르지 않고 그 자리에 박혀 있기에, 읽는 이는 멈추어 서서 그 의미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이것은 텍스트와 ‘나’ 사이의 운명같은 ‘직면(直面)’이다.

화면과의 줄다리기에서 일방적으로 패하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지키는 법은 명확하다.


미끄러운 빛의 속도에 휩쓸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거친 종이의 마찰력을 이용해 스스로 멈춰 서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거친 종이 위에서 시간은 비로소 나이테가 된다.

그러나 ‘화면(畵面)’ 자체가 악(惡)은 아니다. 화면은 본질적으로 확장을 지향한다. 사각의 프레임은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세계로 열려 있는 창(窓)이다.

그곳에서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고, 가보지 못한 대륙의 지식을, 만나보지 못한 이의 지혜를 찰나에 획득한다.


이것은 비록 ‘편집’이란 미학의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고립을 막고 무한한 연결을 가능케 하는 수평적 자유의 광장이다.


반면 ‘지면(紙面)’은 자발적인 고립을 요구한다. 책을 펼치는 그 순간,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시야를 좁게 만들어 들여다 봐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


게다가 타인과, 또 그의 경험과 즉각적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이것이 지면의 명백한 한계이자 약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단절’과 ‘고립’ 덕분에 삶의 시선은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나’의 내면 밑바닥으로 침잠할 수 있다.


결국 삶의 철학은 어느 한쪽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두 축의 교차점을 찾는 데 있다.


화면을 통해 세상의 넓이를 확보하지 못한 자는 편협해지고,

지면을 통해 생각의 깊이를 확보하지 못한 자는 얄팍해진다.


이 시대의 사유는 화면이라는 수평선 위를 날아다니다가, 지면이라는 수직의 닻을 내릴 때 완성된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화면은 세상을 향해 열린 창문이고, 지면은 자신을 향해 뚫린 우물이다. 창문 없는 방은 답답하고, 우물 없는 마당은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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