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 딸아.
너희가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소파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볼 때면, 아빠는 종종 자동차와 운전자를 떠올리곤 한다.
우리의 몸은 영혼을 태우고 인생이라는 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고, 그 차를 움직이는 정신은 운전자와 같단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지 않니?
우리는 종종 자동차를 너무 아끼는 나머지, 정작 어디로 가려했는지 목적지를 잊어버리곤 한다. 세차를 하고, 기름을 넣고, 광을 내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는, 정작 시동을 끄고 주차장에만 머물러 있는 꼴이지.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런 상황을 두고 아주 날카로운 말을 남겼다.
쉽게 말해, 우리 몸은 아주 강력한 독재자라는 뜻이다.
몸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린다.
“다리가 아프니 도전은 이쯤에서 멈춰라.”
“지금은 너무 졸려, 책은 내일 읽어도 되잖니?”
“상상하지 말고 현실을 생각해야지!”
이 독재자는 ‘편안함’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쥐여주며, '회피'라는 말랑한 카드를 주머니에 넣어주며 너희가 가진 고귀한 ‘정신(목적)’을 자꾸만 뒷전으로 미루게 만든다.
운전자가 핸들을 잡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자동차가 제멋대로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버티는 형국이지.
아빠도 젊은 날엔 이 독재자에게 참 많이도 굴복했단다. 원대한 꿈을 꾸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 무거운 눈꺼풀이라는 신체의 반란군에게 제압당해 이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적이 수없이 많았으니까.
피지컬. 뇌지컬. 취미. 경제적 자립
새해 첫날 영상 통화를 하는 동안 너희가 이야기를 건네 준 올해 계획에 포함된 단어들이야.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표현들이야. 단박에 실현이 되지 못하더라도, 시작하는 올해가 될 수 있겠다는 다짐처럼 꼭 실현될 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아이야.
더더욱 기억하렴. 좋은 차를 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그 차를 타고 ‘어디에 도착하느냐’가 인생의 진짜 목적이라는 것을.
몸이 요구하는 안락함에만 귀 기울이다 보면, 너희의 정신은 결국 그 안락함 속에 갇혀 길을 잃게 된다.
때로는 몸이 비명을 지르며 쉬자고 할 때, 그 소리를 너그럽게 달래며 한 걸음 더 내딛는 것. 그것이 바로 너희가 너희 삶의 진짜 주인이 되는 순간이다.
몸을 학대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자동차가 운전자를 끌고 다니게 두지 말고, 운전자가 자동차를 부리게 하라는 것이다.
너희의 정신이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 물이 아니라, 그 그릇을 빚어내는 도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몸은 영혼이 거주하는 집이지만, 집주인은 언제나 ‘정신’이어야 한다. 집이 낡고 피곤하다고 해서, 세입자(몸)에게 안방을 내어주지 마라.”
아빠가 필사한 에머슨의 말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아빠가 현실적으로 번역해 줄게.
“너의 숭고한 건강에 대한 다짐(정신)이 자정이 다 되어 풍기는 치킨 냄새(신체) 앞에서 무참히 무릎 꿇는 것. 그것이 바로 ‘신체의 독재’에 굴종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너무 늦은 시각. 달콤한 기름때가 영혼의 장기 구석구석에 베어 들게 하지는 말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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