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병

[ 언어와 나의 세계 ] 116

by 정원에

몸에 찾아오는 병은 예고 없는 불청객과 같다.


견고해 보이던 일상의 벽에 균열이 생기고, 당연하게 여기던 호흡과 걸음이 무거워질 때, 비로소 육체라는 집이 영원하지 않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때 의학적 처치는 무너진 벽을 보수하고, 썩은 기둥을 도려내는 긴급한 공사와 같다.


멸균된 칼날은 환부를 정확히 찾아내어 통증의 원인을 제거한다.

항생제는 침입자를 몰아내고, 진통제는 감각을 잃게 하며, 봉합사는 벌어진 살을 다시 잇는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투쟁이며, 기능의 복원을 목표로 하는 기술적인 숭고함이다.


그러나 의학이 도려낸 자리에 남는 것은 텅 빈 구멍과 붉은 자국이다. 병든 조직은 제거되었을지언정, 병을 앓으며 무너져 내린 마음의 지반은 메스로 해결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사유적 수술이 시작된다. 의학이 고통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볼 때, 사유는 고통을 ‘해석해야 할 텍스트’로 바라본다.

왜 이 균열이 생겨났는지, 이 멈춤이 삶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묻는 과정이다. 정신(精神)이라 불리는 영역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건강한 정신이란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의학적 수술이 끝난 후, 덜 아물어 욱신거리는 자리를 외면하지 않고 응시하는 힘이다.

병이 가져다준 고독과 무력감을 억지로 긍정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며 생겨난 삶의 공백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채우는 과정이다.

육체의 병이 세포의 오작동이라면, 정신의 병은 ‘의미’의 상실에서 온다.

의사가 찢어진 혈관을 꿰맬 때, 철학적 자아는 찢겨진 시간과 서사를 꿰맨다. 마취 없이 맨 정신으로 고통의 본질을 직면해야 하기에 이 수술은 더디고 고통스럽다.


게다가 의학적 수술은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져 소리도, 냄새도, 이미지도 공유할 수 없이 차단되지만, 사유적 수술은 일상이 수술장이기에 곁을 지키는 게 더욱 힘겹다.

하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꿰매어진 상처는 단순한 흉터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옹이가 된다.


결국 병을 다스린다는 것은 두 가지 수술을 동시에 집도하는 일이다. 차가운 이성으로 환부를 도려내는 의학의 손길과, 뜨거운 성찰로 그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사유의 시선이 만나야 단순히 ‘고쳐진 존재’가 아니라 ‘깊어진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의학은 고통을 침묵시켜 생명을 연장하지만, 사유는 고통에게 말을 걸어 삶의 존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의학의 메스가 고통을 침묵시켜 ‘생존’의 시간을 벌어줄 때, 사유의 바늘은 그 상처에 말을 걸어 찢어진 삶의 ‘의미’를 다시 꿰매어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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