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탈옥을 위하여
[ 사유가 머문 자리 ] 3
○•_스스로 채운 족쇄를 짤그락거리며
‘나’는 참으로 기이한 건축가다. 벽돌 한 장, 철창 하나 없이도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감옥을 짓고는 그 안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떡하니 앉았다.
죄수도 '나'이고, 교도관도 '나'이며, 보이지 않는 망루에서 감시의 눈을 번뜩이는 것도 결국 '나'이다.
이 감옥의 이름은 ‘내면의 파놉티콘’. 이 기묘한 감옥에서 ‘나’는 소소한 욕망이나 사소한 기쁨을 누릴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치 남의 집 담벼락 밑에서 몰래 딴 홍시를 베어 무는 아이처럼, 입가에 번지는 달콤함보다 등 뒤의 서늘함을 먼저, 알아서 느낀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음에도, 연신 허공을 향해 “제가 먼저, 많이 죄송합니다”라는 탄원서를 끊임없이 제출한다. 엄격한 사감 선생님이 사라진 기숙사 복도끝 작은 방에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말이다. 세상은 내가 오늘 오후에 케이크를 두 조각 먹었는지, 혼자 영화를 보며 낄낄거렸는지, 갑자기 바뀌어버린 보행자 신호에 차를 움직였는지, 복수를 어설프게 도모했는지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더 무관심하다.
타인이 ‘나’를 24시간 감시하고 있을 거라 믿는 것은, 여지껏 ‘나’란 존재가 우주의 주인공이라고 믿는 지독한 자기애의 뒷면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그만 피고석에서 일어나자.
‘나’를 짓누르던 그 무거운 공기는 도덕적 타락의 징후가 아니라, 그저 마음의 환기가 필요하다는 신호일 뿐이다. 눅눅한 ‘주눅’을 뽀송하게 말리는 것은 타인의 허락이 아니라, 원래 죄가 없었던 ‘나’를 스스로 사면(赦免)하는 뻔뻔한 용기다.
감옥의 문은 잠긴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손잡이를 돌리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 손잡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는, 성숙한 고독을 제대로 즐기리라. ‘나’는 원래부터, 무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