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얼룩질 용기

[ 내마음 사전 ] 135

by 정원에

한때 나는 ‘무던하다’는 말을 훈장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는 “아무거나”라고 답했고, “어디 갈래?”라는 물음에는 “난 다 좋아. 너 좋은 곳으로”라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것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실은 ‘모호함’이라는 안전벨트였습니다.


취향을 드러내지 않으면, 비난받을 일도 없습니다. “그 노래 별로더라” 혹은 “그 옷은 좀 이상해”라는 타인의 평가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투명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취향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세상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긁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둥글게 웅크린 채 굴러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꽉 조인 안전벨트 안에서 나는 안전했지만, 정작 나는 어디로도 운전해 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수석에 앉아 풍경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는 방관자였을 뿐입니다. 그동안 세련된 취향을 갖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침묵하는 편을 택했던 겁니다.

‘무엇이든 좋다’는 말은, 뒤집어 보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지독한 무관심입니다. 그것은 내 삶에 들어오는 모든 자극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영혼의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주인을 잃어버린 빈집과도 같습니다.


가장 큰 죄악은 촌스러운 넥타이를 매거나, 유행 지난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아니겠죠. 내 심장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내 눈동자가 언제 커지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진짜 비극입니다.


나만의 기준, 즉 취향을 갖는다는 것은 나의 영혼에 지문을 새기는 일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조악한 그림일지라도, 내가 그 색감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나의 우주가 됩니다.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는 영화일지라도, 내 가슴을 울렸다면 그것은 나의 명작이 됩니다.


설령 그것이 ‘나쁜 취향’이라 불릴지라도, 그 안에는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체온과 맥박이 뛰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조율된 완벽한 정답보다는, 조금은 삐걱거리고 불협화음을 내더라도 내가 직접 고른 악기로 연주하는 삶이 훨씬 더 생동감 넘치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안전벨트를 풀고 거친 도로 위로 내려서려 합니다. 때로는 흙탕물이 튀고, 때로는 길을 잃어 비웃음을 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미건조한 안전함 속에서 서서히 시들어가는 것보다, 기꺼이 촌스럽게, 그리고 선명하게 나만의 얼룩을 남기며 살고 싶습니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에 열광하는지 분명히 아는 것. 그 호불호(好不好)의 굴곡진 능선이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명서이기 때문입니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타인의 완벽한 정답보다 나의 서툰 오답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나로 사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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