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감에 묻은 아모르 파티
[ 사유가 머문 자리 ] 9
○•_진자 운동의 미학
인공지능이 세계 곳곳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고, 가상 현실이 못 가본 산속 호수 주변의 공기마저 시뮬레이션하는 시대다.
조만간 <이제 인간의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냉소적인 질문이 현실적으로 고개를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바로 여행에서 돌아온 자의 눈빛이다. 알고리즘은 최적의 경로를 계산할 뿐, 여행지에서 묻혀온 먼지와 땀 냄새를 일상의 경이로움으로 변환하는 화학적 치환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인간의 성장은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물리적 거리의 경험이 아니라, 돌아와 마주한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응축된 시선의 도약에서 완성된다.
여행지에서 관찰(만)당하다가,
그곳을 떠나기 임박해서(라도) 관찰하게 되고,
관찰한 것들을 씹어 먹듯 체험하면서 체득하고,
그것들을 나의 일상으로 옮겨와 행동으로 전환하는,
진짜 여행 고수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다시 태어난다. 그에게 여행 가방에서 쏟아지는 산더미 같은 빨랫감은 귀찮은 가사 노동의 목록이 아니다. 다시 ‘벗어날’ 막연한 기대에 기대는 허무한 여독(旅毒)이 아니다. 그것은 타지(他地)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호의와 감탄에 대해 수많은 발자국이 기억하는 꿈이다.
세탁기 속에 이 꿈들을 밀어 넣어 더욱 선명하게 씻겨 내면서 비로소 여행의 프롤로그를 마치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의 고수가 쓴 여행기에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태도, 즉 아모르 파티(Amor Fati)의 실천 리스트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여행지에서 씹어 삼킨 낯설은 감각들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과정인 것이다. 감각은 잠시 숨길 수 있을 뿐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돌아오지 않는 떠남은 표류이며, 떠나지 않는 머무름은 고임이다. 이것은 삶이란 떠남과 돌아옴의 거대한 진자운동임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가는 이유는, 돌아올 이유를 찾기 위한 것이다. 그 이유로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여행자는 캐리어 바퀴가 멈춘 곳에서 마음의 바퀴를 다시 굴린다. 어제와 똑같은 출근길이 한 편의 로드무비처럼 느껴진다면, 이미 일상의 혁명가가 된 것이다.
우리 주변에 늘 있는 일상의 혁명가는 누구인가? 바로 어린아이들이다. 일상으로 돌아와 창조적 아이가 다시 되어보는 여행이 혁명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