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것에 대한 예의

[ 사유가 머문 자리 ] 14

by 정원에

○•_엔진을 식히는 시간을 즐기기

인간은 종종 자신의 영혼을 육체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담긴 아주 고귀한 와인처럼 여긴다.


그래서 영혼의 문제는 벽돌같은 철학책이나 잠을 잊은 사유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와인을 담고 있는 부대가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면서!



내 몸과 가장 가까운 것, 즉 ‘먹고 자는 것’을 반복되는 일처럼 여기는 태도는 일종의 오만이다. 이것은 마치 최고급 스포츠카를 소유한 운전자가 연료 주입구에 저질 휘발유(먹는 것)를 들이붓고, 엔진 오일은 수년째 갈지 않은 채(자는 것), 비포장 자갈길(해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을 골라 달리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러다 보면, “왜 이 차는 시속 300km로 달리지 못하는가?”라며 제조사를 탓하거나 넘치는 크고 작은 행(幸)을 비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차가 멈춘 것은 운전자의 재능 부족 탓도, 도로의 저주 탓도 아니다. 그저 정비 불량일 뿐인데 말이다.


‘코나투스(Conatus)’, 즉 자기 존재를 보존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했던 스피노자의 당부를 못 들은 척, 피로에 찌든 뇌가 만들어낸 짜증을 ‘우울’이라 (스스로 먼저)명명하고, 수면 부족으로 인한 판단력 저하를 ‘실존적 허무’라고 착각한다.


밤새 뒤척이다 퀭한 눈으로 맞이한 아침,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며 짜증이 밀려 올라오는 이유는 신에게 버려져서가 아니라, 그저 간밤에 깊은 수면이 부족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9할이다. 위장이 편안하지 않으면 에피쿠로스의 쾌락도, 칸트의 정언명령도, 니체의 위버멘쉬도 그저 시끄러운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위대한 정신은 건강한 장(腸)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라는 사실을 시인해야 한다. 그러니 거창한 인생의 항로를 수정하기 전에, 오늘 점심 식탁 위의 메뉴부터 점검해 볼 일이다.


나를 괴롭히던 반복적인 가라앉음의 정체가 사실은 단순히 ‘장 트러블’였음을, ‘수면 부족’이었음을 깨닫고 개선하려고 몰두하는 시간 내내 삶은 비극에서 희극으로, 다시 경쾌한 시트콤으로 전환된다.


몸을 돌보려는 성실한 노력은 가장 기초적인 사유이다.◉



작가의 이전글구속을 연주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