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핸들을 잡으며 배워가는 것들

[ 내마음 사전 ] 140

by 정원에

기억나시나요?


처음 운전석에 앉았을 때 느껴지던 그 낯선 공포를요. 장롱 면허 3년차. 차도 없던 저는 비오는 날 친구에게 호언장담하며 일행을 태운 게 첫 실제 운전이었습니다.


‘안전운전’을 핑계(!)로 느릿느릿 달려 다시 돌아온 뒤 알게된 친구들은 아마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렀을 겁니다. 실제로 저는 옷이 다 젖었었구요.


백미러를 보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완벽한 주차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엑셀에 발을 올릴 수 있는 ‘작은 깡’이었죠. 삶도 그렇습니다. 무언가 새로 시작할 때, 우리는 너무 많은 준비를 하려다 지치곤 합니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배웠듯, 가장 위대한 미덕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도로의 흐름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 ‘용기’입니다.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일단 출발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용감합니다.

운전이 조금 손에 익으면 시야가 넓어집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차선, 정지선, 신호... 약속된 규칙들이 보이고, 그것을 어기는 사람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지요. “저 사람은 왜 저러지?” 하며 화를 내는 건, 당신이 그만큼 올바르게 살고 싶어 하는 ‘정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에너지를 쏟다 보면, 정작 내가 즐겨야 할 드라이브의 풍경은 놓치게 되더군요. 정의감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칼날이 되지 않도록 다독이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옳고 그름을 넘어서는 겁니다.

누군가 난폭하게 내 앞을 가로막을 때, 같이 경적을 울리며 달려드는 대신 가만히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이 옵니다. 예전에는 그것이 ‘지는 것’ 같아 억울했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것은 ‘나를 보호하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라는 것을요.

브레이크는 차를 멈추는 도구가 아니라, 내 마음의 속도를 조절하는 도구였습니다. 타인의 무례함에 내 감정의 핸들까지 내어주지 않는 것. 화를 삭이며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그 침묵의 시간이, 사실은 가장 강한 힘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갑니다. 우아한 운전자가 되어갑니다. 나를 위해 멈추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제 우리는 굳이 싸우지 않습니다. 막히는 길이라면 조금 일찍 나서거나 돌아가면 되고, 급한 차가 있으면 먼저 보내줍니다. 도로의 흐름을 읽는다는 건, ‘삶의 빈틈’을 볼 줄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부드럽게 피해 가는 운전처럼, 삶의 문제들도 정면충돌하기보다 유연하게 흘려보내는 법을 알게 됩니다. 억지로 길을 뚫는 것이 아니라, 길이 난 대로 물 흐르듯 나아가는 상태. 그때 비로소 운전은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 되고, 삶은 치열한 전투가 아니라 잔잔한 여행이 됩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구간을 지나고 있나요?


엑셀을 밟아야 할 용기가 필요한가요, 아니면 브레이크를 밟을 여유가 필요한가요? 어떤 단계에 있든, 당신은 목적지를 향해 잘 나아가고 있습니다. 거친 도로는 당신을 능숙한 드라이버로 만들었고, 무례한 세상은 당신을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우리 같이 안전하면서 말이죠. ❤️



_내 마음의 한 문장

“고수는 끼어드는 차에 화를 내는 대신, 그와 나 사이에 ‘빈틈’을 만들어 나의 안전과 평화를 먼저 챙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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