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나의 향기가 난다

[ 내마음 사전 ] 138

by 정원에

우리의 손바닥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때로는 나보다 나를 더 깊이 꿰뚫어 보는 비서가 하나 살고 있습니다.


휴대폰이라는 이름의 이 작은 친구는, 내가 외로울 때 어떤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지, 밤잠을 설칠 때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요즘 무엇에 끌리고 있는지 놀라울 만큼 정확히 알고 있지요.


처음 휴대폰을 샀을 때 설정된 ‘기본값’은 참 편리합니다. 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화면은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로 채워지고, 추억의 장소를 기억해 주죠. 우리는 그 물결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닙니다.

하지만 자주,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편안함이 혹시 나를 가두는 부드러운 감옥은 아닐까?> 하고요. 우리 삶의 기본값이 되어 버린 ‘알고리즘’이 차려주는 밥상은 달콤하고 입에 딱 맞습니다. 그것은 내가 숲을 헤매며 찾아낸 산딸기의 맛이 아니라, 누군가 내 입맛을 분석해 설탕을 뿌려준 통조림 과일의 맛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달콤함 속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선택’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주어진 보기 중에서 ‘고르는’ 행위를 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자유롭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기분일 뿐이니까요.


그렇다고 이 편리한 기기를 당장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대신 우리 마음의 기본값을 ‘나의 설정’으로 바꾸는 작은 반란을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숲에서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대로 시인하지 않는 겁니다. 바로, ‘예측 불가능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알고리즘이 찾아주는 ‘나에게 딱 맞는 것’들은 사실 ‘어제의 나’를 분석한 결과물일 뿐이니까요. 기계는 우리의 과거를 학습해서 미래를 제안하니까요. 그러니 그 추천을 따라가면 우리는 영원히 어제의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만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떠올린 생각처럼, 알고리즘이 <이 영상 좋아하잖아요?>라고 물을 때, 과감하게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을 틀어보는 것. <이 물건이 필요하죠?>라고 할 때, 투박하고 손때 묻은 옛 물건을 찾아보는 것. 이것은 기계가 깔아놓은 레일 위를 마음껏 탈선해 보는 ‘기분 좋은 일탈’입니다.


마치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문득 이름 모를 시골 국도로 핸들을 꺾는 것과 같습니다. 고속도로는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창문을 열어 흙내음을 맡거나 길가에 핀 들꽃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안내하지 않은 그 울퉁불퉁한 샛길에는, 데이터로는 분석할 수 없는 계절의 냄새와 우연의 마법이 기다리고 있죠.


당신이 추천 목록을 외면하고 낯선 선택을 할 때마다, 당신은 데이터의 덩어리가 아닌 ‘예측 불가능한 우주’의 본 모습을 되찾게 되는 겁니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거부할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정의하게 됩니다.


최첨단이라는 기계가 당황하여 <이 사람이 어제 그 사람이 맞어? 다시 분석해야겠는걸!>하며 멈칫하는 그 순간. 바로 그 찰나의 틈새에서, 진짜 당신의 삶은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편리함이 건네는 정답지 대신, 조금 불편하고 낯설더라도 내가 직접 고른 오답을 선택해 보세요. 그 서툴고 낯선 선택들이 모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당신만의 고유한 취향이 되고, 그 취향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당신의 향기가 될 테니까요. ❤️



_내 마음의 한 문장

“ 알고리즘이 건네는 추천은 나의 ‘과거’이지만, 그것을 거스르는 당신의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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