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션, 이야기속으로 ] 8
아파트 화단, 이름표조차 소실된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다. 두 손으로 감싸야 겨우 잡힐 법한 굵직한 밑동에서 세 갈래의 줄기가 뻗어 나오고, 그중 기세가 가장 등등한 놈이 다시 세 개의 가는 줄기를 허공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그 수직의 분열 앞에 두 사람이 서 있다. 「내 어깨에서 나간 놈들.」 아버지는 나무의 갈라진 마디를 볼 때마다 자신의 마디마디가 쑤시는 기분을 느낀다. 두 손 가득 쥐어지는 굵은 밑동은 젊은 날의 자신이다.
세 갈래로 갈라진 지점은 자식 셋을 대학에 보냈던 그 치열했던 분기점이었다. 그는 가장 굵은 줄기 끝에서 다시 세 갈래로 돋아난 가는 줄기들을 본다. 「저 어린 것들이 공중에 집을 짓겠다고 저리 기를 쓰는구나.」
그는 알고 있다. 줄기가 갈라질수록 나무의 속살은 연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폭은 커진다는 것을. 아버지는 저 가는 줄기들이 혹여 부러질까 노심초사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지탱해온 이 육중한 밑동이 없었다면 저 여린 것들이 저토록 당당하게 하늘을 찌를 수 있었을까 싶어 묘한 쾌감을 느낀다.
「내 진액을 빨아 먹고 올라간 놈들, 그러니 부디 나보다 높게 뻗어라.」 그것은 숭고한 희생이라기보다, 자신의 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받고 싶은 노련한 투자자의 마음과도 같다.
옆에 선 아들은 아버지가 보는 ‘뿌리의 안정감’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의 눈은 오직 줄기가 갈라지는 분기점에 머문다. 세 갈래 중 가장 굵은 줄기, 그리고 거기서 다시 갈라지는 세 개의 가는 선들. 아들에게 그것은 선택의 강요이자 생존의 갈림길이다.
「저 좁은 틈새에 끼어있는 공기마저 무겁다.」 아들은 저 가느다란 줄기 중 하나가 자신이라 생각한다. 굵은 줄기에 몸을 기대고 있지만, 사실은 그 줄기를 딛고 더 높은 허공으로 자신을 던져야 하는 운명. 아들은 갈라진 틈새를 보며 깨닫는다.
성장이란 결국 누군가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며, 독립이란 가장 가까웠던 살점을 찢고 나오는 고통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어깨(밑동)는 든든한 대지 같지만, 동시에 자신을 평생 그늘 아래 가두어둘 거대한 감옥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뒷모습에서 자신이 밀어 올린 수액의 흐름을 읽으려 하고, 아들은 나무 끝 단단한 옹이를 보며 자신이 짊어져야 할 내일의 무게를 가늠한다. 두 사람은 같은 나무를 보지만, 한 사람은 지나온 궤적을 보고 다른 한 사람은 버텨야 할 고도를 본다.
삶은 결국 밑동의 인내와 가지의 불안이 수직으로 공존하는 거대한 협력인 셈이다. 나무는 말이 없다. 그저 갈라지고, 또 갈라지며 스스로를 더 넓게 증명할 뿐아다.
이 심오한 부자의 침묵을 깬 것은 지나가던 경비 아저씨의 한마디였다. 「그 나무, 내일 전지 작업합니다. 너무 정주지 마세요. 싹둑 잘려 나갈 테니까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