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션, 이야기속으로 ] 7
오후 4시의 햇살은 힘없이 거실 바닥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40년이라는 시간의 켜를 쌓아온 친구의 집은, 낡았지만 잘 닦인 가구들처럼 고요한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현관에 들어설 때, 친구의 눈길은 반가움보다 먼저 우리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한기(寒氣)에 닿았다. 그는 마치 귀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레 우리의 외투를 받아 들었다. 친구의 손마디에 불거진 힘줄을 본다.
40년 전, 축구공을 함께 차며 낄낄대던 그 탄력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타인의 짐을 묵직하게 받아내는 ‘수용의 근육’이 자리 잡았다. 친구는 내 외투의 깃을 바로잡으며, 이 옷이 견뎌온 세상의 풍파를 읽어낸다. <이 사람, 여전히 뻣뻣하게 살고 있군>이라는 안쓰러움의 독백을 그의 짧은 목례에 담은 채.
어두운 안방 옆 옷장 안, 나의 외투는 친구의 외투들 사이에 끼워졌다. 굳게 닫힌 옷장 문을 보며 생각한다. 내 사회적 가면이 저 어둠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겠구나. 저 안은 아마도 인간들의 허세가 다 빠져나간, 섬유들의 가장 솔직한 반상회장일 것이라고.
저녁 8시. 잘 차려진 음식과 소주 몇 잔에 우리는 인생의 쓴맛을 안주 삼아 털어냈다. 친구의 아내와 나의 아내, 그들이 나누는 웃음소리는 집안의 공기를 덥히는 난로가 되었다. 삶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내 외투를 맡길 수 있는 용기와 그 외투를 따뜻하게 보관해 줄 친구를 찾.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이별의 시간, 친구가 옷장에서 내 외투를 꺼내 왔다. 나는 습관적으로 차가운 바깥 공기를 예상하며 어깨를 움츠린 채 소매를 밀어 넣었다. 그런데, 그 외투를 다시 입은 후... 내 어깨에 닿은 것은 서늘한 안감이 아니라, 누군가의 체온이 은근하게 배어 있는 묵직한 다정함이었다.
친구의 눈을 바라봤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툭툭, 다시 털어준다. 그 손길은 <가서 또 버텨내라>는 응원이자, <힘들면 언제든 여기다 네 짐을 벗어놓으라>는 고요한 선언 같았다.
외투가 찬바람을 막아준다고 믿지만, 사실 그날 나를 지켜준 것은 섬유의 밀도가 아니라 친구의 옷장 속에 고여 있던 ‘기다림의 온도’였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