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와 경비원

[ 픽션, 이야기속으로 ] 9

by 정원에

분리수거장의 무채색 공기 속에서 그 갈색 의자는 혼자만 이질적인 근육을 뽐내고 있었다.


PC방의 어두컴컴한 함성에 익숙할 법한 그 의자는, 휑한 벌판에서 홀로 서 있는 고목 같았다. 하지만, 목덜미 부분은 사자의 갈기처럼 풍성하게 부풀어 올라 ‘안락의 권위’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경비원에게 그 의자는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평생 한 번도 초대받지 않은 ‘구름의 좌석’ 같았다. 그는 마른 수건으로 의자의 인조 가죽을 조심스레 닦아내고는 앉을까 말까를 망설이듯 의자를 이리 저리 돌려 본다.


그러다 허리를 깊숙이, 아주 깊숙이 밀어 넣는다. 뒤통수를 감싸는 풍성한 쿠션이 그의 뻣뻣한 목뼈를 유연하게 꺾어놓는다. 그는 깨닫는다. 안락함이란 결국 내 몸을 타인(물건)의 모양에 맞춰 굴복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하며 그는 우람한 이 갈색 괴물과 ‘합체’를 시도한다. 그러나 의자의 입장에서는 이 노인의 무게가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동안 제 위에 올라탔던 이들은 밤새도록 가상의 전장을 누비며 씩씩대던, 기름진 긴장감으로 가득 찬 젊은 육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무게는 너무나 투명하다. 뼈마디가 가죽 너머 스프링에 닿을 때마다, 의자는 그가 견뎌온 수만 번의 순찰과 빗자루질의 궤적을 읽어낸다.


그가 엉덩이를 들썩일 때마다 의자의 목덜미 쿠션은 그의 굽은 등을 부드럽게 밀어 올린다. 마치 <이제 전쟁은 끝났으니 여기서 좀 졸아도 좋다>고 다독이는 늙은 전우의 손길 같다. 노인은 세 번째로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하다가 비로소 멈춘다.


가장 편안한 자세는 가장 거만한 자세와 닮아 있다는 사실에 그는 작게 헛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다 순간 맞닿은 시선에서 그는 어린아이처럼 머쩍은 미소를 짓는다. 분리수거장의 소음 속에서, 버려진 의자와 버려지는 시간을 지키는 경비원은 잠시나마 같은 꿈을 꾼다.


세상 모든 버려진 것들은 사실 누군가에게 깊숙이 안기고 싶어 한다는 단순한 진리. 그는 주머니에서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꺼내려다 멈칫한다. 오늘 밤, 경비실 창 너머로 보일 그의 뒷모습은 아마도 저 갈색 사자의 갈기 속에 파묻혀 꽤나 위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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